이번 주 트랜스젠더 페이지 모음입니다.
그나저나 지금 이 시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원안(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임신 및 출산 항목 포함) 통과를 위해 농성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추위에 고생하고 있겠네요..
Dec 12, 2011 – Public
::기사::
힐러리 클린턴은 “동성애자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인권)이며 인권은 동성애자의 권리다”고 말했다.
지난 화요일(2011.12.06.), 미국 국무부 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전지구적 LGBT 인권 보호를 요구하는 역사적 정책 연설을 하였다.
그 연설에서 클린턴은, 미국 정부는 법 앞에서 LGBT의 동등한 대우를 증대할 몇 가지 단계를 제안했고, 백악관이 화요일에 발표한 대통령 메모를 설명했다.
“오늘 나는, 오늘날 전 세계의 너무 많은 부분에서 인권이 부정되고 있는 인구 중 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진행한 작업을 발표하고자 한다.”고 클린턴은 말했다.
“많은 방향에서, 그들은 비가시적 소수자다. 그들은 납치되고, 구타당하고, 위협받고, 종종 처벌당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당국이 그들을 보호하려고 해도, 동료 시민이 가하는 경멸과 폭력 피해를 겪는다.”
“그들은 일하고 교육 받을 기회를 부정당한다. 집이나 지역에서 추방된다. 억압받고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부정된다. 내가 말하고 있는 이 집단은 게이, 레즈비언, 바이, 그리고 트랜스젠더다. 인간은 자유를 부여 받고 태어났다. 평등과 존엄을 부여 받았다. 그것은 우리 시대 남겨진 인권 투쟁 영역의 하나다.”
클린턴은 또한 미국의 부족함에 동의했다. 또한 미국의 주state와 연방 법 아래서 LGBT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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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워낙 유명한 이슈라 기록으로 남겨둘 겸 올립니다.
아울러 한국에도 이런 말을(그것이 말 뿐이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정치인이 나오길 바랍니다.
Dec 13, 2011 – Public
::기사::
2011.12.09. 기사
다섯 살 학생을 위한 트랜스젠더 교육이 시작되고, 트랜스젠더 혐오 범죄 형량이 두 배로 늘어났다.
영국이 다섯 살 어린이는 정부 계획에 따라 ‘트랜스젠더의 평등’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수천 곳의 초중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개인, 사회, 그리고 건강 교육'(PSHE) 과정에 트랜스젠더 관련 정보가 포함될 예정이다.
이 법안은 어제 출간된 ‘진전된 트랜스젠더 평등 – 행동 계획’이란 연합 정책 프로그램의 일부다.
이 법안에서 장관은 ‘트랜스혐오 왕따’는 ‘다양한 젠더 행동’을 표현하는 아이를 타겟 삼는 것으로 정의하는데, 이것과 싸우기 위한 광범위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법안은 학교가 ‘다양한 젠더의 아이를 더욱더 포용해야 한다’고 기술한다.
‘다양한 젠더 행동을 표현하는 소년과 소녀의 70% 이상이 학교에서 왕따를 겪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학교는 아이들이 배우는데 있어 안전하고 지지하는 환경이어야 한다.’
‘트랜스혐오 왕따에 태클을 거는 것은 우리 사회가 더욱 관용적일 수 있도록 보장한다.’
PSHE 리뷰의 일부로서, 교육부는 교육과정에 ‘트랜스젠더 평등을 포함하는 평등과 다양성 교육’을 추가하는 것을 고려할 것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그런 교육의 결과로 ‘성인 이슈’로 아이들이 과중한 부담을 질 것이기에 위험하다고 말했다.
Parents Outloud의 설립자 마가렛 모리씨는 ‘이것은 성인 이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가 좀 더 나이가 들 때까지 혹은 그들이 요구할 때까지 그것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문제는 아이들이 어린 나이게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을 과도하게 부담씌우는 것이다. PSHE는 이미 다른 이슈로도 충분히 부담스럽다.’
트랜스젠더는 성전환 수술과 남자와 여자의 성적 기관을 모두 지닌 사람을 포함한다.
다른 사람은 트랜스젠더 구직을 돕기 위한 정책 경향의 일부로 제안되었다고 평가한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고용인 열 명 중 아홉은 직장에서 차별이나 괴롭힘을 겪는다.
또한 어제 발표에서 트랜스젠더를 혐오하여 살해한 살인범은 구속기간 연장을 공포했다.
케네쓰 클락은 혐오 살해로 유죄를 선고 받은 사람의 기본 형량은 30년 이상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을 향한 유사한 공격 또한 동일한 기간이다.
사법부가 말하길, 범죄인이 ‘용납할 수 없는 범죄에 더 무거운 형량을 받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린 피더스톤Lynne Featherstone은 ‘너무 많은 트랜스젠더가 아직도 운동장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부터 직업을 못 구하거나 범죄 대상이 되는 것처럼, 그들 삶의 모든 단계에서 편견에 부딪힌다.’고 말했다.
올해 영국의 여권은 더 이상 여권소지자의 섹스를 기록하지 않고 있다.
이 움직임은 공문에 ‘여자’나 ‘남자’로 표시해야 하는 것에서 트랜스젠더와 인터섹스가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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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량 증가와 관련해선 http://goo.gl/bJida 참고.
번역이 많이 거치네요..;;;
Dec 14, 2011 – Public
::기사::
성적지향에 바탕을 둔 차별 예방 법령을 통과한 펜실배니아 군구의 결정에 지역 LGBT는 승리라며 환호했다. 하지만 일부는 염려했다.
ABC 27이 보고했듯, Susquehanna 군구는 관련 법령을 승인하기 위해 지난 주 7-1에 대한 투표를 했고 LGBT 권리 진전을 위해 펜실배니아의 26번째 지방자치체가 되었다.
이 법령은 성적지향(및 젠더정체성)으로 인해 거주 및 고용을 거부 당할 수 있는 주민을 보호한다. 아울러 이 법은 트랜스남성이 남성화장실을, 트랜스여성이 여성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인정한다.
몇몇 거주자는 공공시설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령에 반대한다. “이 법에 대한 나의 불만은 진짜 트랜스젠더를 향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남성이 그들의 욕심으로 이 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한 거주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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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반대는 저런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ㅡ_ㅡ;;
Dec 15, 2011 – Public
::기사-통계::
미국엔 레즈비언, 게이, 바이, 트랜스젠더가 몇 명이나 있을까?
정확한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적 정체화와 젠더 정체성에 대한 더 좋은 통계를 제공하려고 작성한 인구 기반 조사는 증가하고 있다.
가장 최근 데이터는 2006-2008 National Survey of Family Growth, the 2009 California Health Interview Survey, 그 외 연방의 데이터가 있다.
“The Gay and Lesbian Atlas”의 공저자 개리 게이츠는 윌리엄스 연구소의 2011년 4월 연구에서 LGBT 인구에 대한 상세 보고서를 출간했다.
• 미국에서 트랜스젠더는 대략 70만 명 정도거나 성인 인구의 0.3% 정도다.
•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는 이들 중, 대다수는 성전환 이행 단계를 겪는다.
• 미국에 LGB로 동일시하는 성인은 800만 명 이상이거나 성인 인구이 3.5% 정도다.
• 알려지지 않은 트랜스젠더 인구 중엔 LGB로 정체화하기도 하기에, 일부는 겹친다.
• LGB 인구 중, 바이는 1.8% 정도로 레즈비언이나 게이는 1.7%다.
• 여성 중 바이로 정체화 하는 비율은 2.2% 정도며 레즈비언은 1.1% 정도다.
• 대략 1,900만 명의 미국인 혹은 성인 중 8.2%가 동성간 성행위를 한 적 있다.
• 대략 2,560만 명의 미국인 혹은 성인 중 11%는 최소한 몇 번은 동성에게 끌린 적 있다고 말했다.
출처 The Williams Institute, UCLA School of Law
*뉴욕에서 트랜스젠더 차별
직장에서 차별
• 74%는 직장에서 괴롭힘을 겪거나 부당한 일을 겪었다.
• 20%는 직업을 잃었다.
• 20%는 승진에 실패했다.
• 37%는 입사면접 후 고용이 안 되었다.
학교에서 괴롭힘
•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에서 75%는 괴롭힘을 겪었다.
• 35%는 신체 공격을 겪었다.
• 12%는 성폭력을 겪었다.
• 14%는 오랜 괴롭힘으로 학교를 떠났다.
경제적 비보호
• 19%는 가계 수입이 1만 달러 혹은 그 이하며, 일반 인구는 4% 수준이다.
• 12%는 실업 상태로 조사 기간 국가 통계는 7%다.
거주 차별
• 8%는 쫓겨났다.
• 19%는 집이나 아파트를 구하는데 실패했다.
• 18%는 젠더 표현 때문에 노숙자가 되었다.
• 24%는 일시적으로 거주할 곳을 찾아야 했다.
• 25%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돌아가야 했다.
• 23%는 집을 소유하고 있지만, 일반 인구는 67%가 소유하고 있다.
서비스와 괴롭힘
• 53%는 호텔, 레스토랑, 공항, 혹은 공무원에게 언어적 괴롭힘을 겪었다.
• 18%는 정부 사무실이나 공무원에게서 평등한 대우를 거부 당했다.
• 11%는 판사나 재판정에서 평등한 대우를 거부 당했다.
• 22%는 경찰에게 괴롭힘을 겪었다.
• 49%는 경찰 출석 요구에서 불편함을 겪었다.
건강 보험 차별과 정신 건강
• 17%는 젠더 표현 때문에 의료 보험 가입이 거부되었다.
• 5.4%는 HIV 양성인데 일반 인구는 0.6%다.
• 29%는 차별 때문에 의료 보험이 지연되었다.
• 36%는 자살을 시도했으며 그 횟수는 22회다. 일반 인구는 1.6%다.
출처 National Transgender Discrimination Survey
Dec 16, 2011 – Public
::기사::
트랜스젠더 아이콘인 카르멘 루프, 고인이 되다.
카르멘은 부상으로 고통 받았고 올해 초 엉덩이 수술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기력은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 그녀의 친구이자 보호자인 쥬겐 후스마는 “월요일 밤, 그녀 정신은 맑았고 말엔 조리가 있었다. 그녀에겐 살려는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상을 겪은 후, 그녀의 정서와 외향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후스마는 “그녀는 체중이 약간 늘었지만 시간이 갈 수록 건강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2011년 12월 15일 오전 6시 25분 성 빈센트 병원에서, 며칠 동안 곁을 지킨 친구들에게 둘러쌓인 상태로 숨을 거뒀다. 후스마와 후스마의 파트너 로빈 워어리, 그리고 절친 디에고와 켈리가 마지막까지 카르멘과 함께 했다.
‘아이콘’이란 말로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사랑받은 트랜스젠더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 그녀는 킹스 크로스에서 뱀과 함께 벨리 댄스를 추는가 하면 웰링턴 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그녀는 1935년 타우마루누이 농장에서 트레버 루프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11살 때부터 엄마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학교를 떠나자마자 루프는 오클랜드와 웰링턴으로 향했다. 군대에 강제 징집되어 훈련을 받고 간호사와 웨이터로 일하면서도 드랙 퍼포먼스를 연습했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 시드니의 킹스 크로스에 도착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녀는 영화 [카르멘 존스]의 도로시 댄드릿지의 역할에서 카르멘이란 이름을 취했다. 그리고 호주 최초의 마오리 드랙 퍼포머는 남자의 옷을 영원히 입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무대에서 뱀과 함께 공연을 하고 훌라 춤을 추기도 했다. 또한 성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1963년 그녀는 유명한 레스 걸스 레뷰Les Girls revue에 합류했다.
2006년 [뉴질랜드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카르멘은 “경찰은 매우 매우 가혹했다.”고 회상했다. “그들은 게이를 혐오했다. 그들은 드랙퀸을 혐오했고 레즈비언을 혐오했다. 그들은 우리를 경찰서로 연행했고, 철창에 가두고 구타했다. 나는 12번 정도 롱 베이 교도소에 구금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날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카르멘은 남자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체포되었다. 하지만 법원은 그녀를 석방했는데, 호주와 달리 뉴질랜드엔 여성의 옷을 입는 남자를 처벌할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1968년 그녀는 뉴질랜드로 귀향했다. 그리고 웰링턴에서 화려하고 유명한 카르멘의 국제 커피숍Carmen’s International Coffee Lounge을 포함한 몇 가지 사업을 운영하는 사업가가 되었다. 커피숍은 고객이 아래층에선 뜨거운 무언가를 마실 수 있고 위층에선 침대에서 뜨거운 무언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시기는 동성애가 불법이었지만, 그녀의 과거가 화려하게 미화된 전설은 아니다. 찻잔은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과 희롱하며 놀 수 있도록 하는 비밀 코드였다. 그리고 카르멘은 경찰이 급습했을 때 도망갈 수 있도록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곳엔 붉은 벽지, 보라색 카펫이 있었고, 드랙퀸, 트랜스젠더, 그리고 게이 남성이 직원으로 일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마담, 높은 신분의 마담으로 옷을 입었다. 가슴이 드러나고 찢어진 드레스였다…”고 그녀는 말한 적 있다. “나와 함께 일했던 모든 드랙퀸은 대경실색할 정도로 예뻤다. 그들은 가발을 사용했고, 화장을 두껍게 했으며, 사랑스런 미니스커드나 찢어진 드레스, 로우탑 드레스를 입었다. 내 소녀들의 상당수가 이집트 카이로에서 했던 상반신을 가졌다.”
카르멘은 또한 오늘날 웰링턴 도서관이 있는 자리에 발코니 스트립 클럽을 열었다. 그리고 밥 존스 경의 후원으로 1977년 시장 선거에 나갔으며 “Get in Behind”란 슬로건과 함께 동성 결혼과 성매매 합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1979년 카르멘은 고향에서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시드니로 돌아가 만년을 보냈다. 그녀는 가장 숭배받고 존중받는 시민이 되었다. 2008년 그녀는 게이와 레즈비언 마르디 그라스에서 진행한 디바의 십년 행사에서 스쿠터를 타고 선두를 이끌었는데, 윗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로빈 워어리는 카르멘이 시드니의 룩우드 마오리 세미터리에서 화장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노동당(?) 2인자이며 웰링튼 중앙 의회 멤버인 그랜트 로버트슨은 트위터에 애도를 표하며 “그녀는 웰링턴의 아이콘이자 거의 시장과 같았으며, 장벽을 깨고 언제나 새로운 일을 찾았다”고 적었다.
웰링턴 시장 셀리아 웨이드-브라운은 카르멘이 용기있고 멋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차별에 저항하고 자신의 삶을 살았던 그녀의 용기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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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두 문장은 http://goo.gl/ZVYfH 에서 가져왔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카르멘 루프라는 분 참 강인한 분이셨네요. 마지막은 좀 안타깝지만.
이런분들 덕분에 사회라는 곳이 나아지는 것이니, 그녀가 영원히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쵸? 루프 삶은 참 멋지다 싶어요. 저라면 조용히 살았을 거 같은데;; 어쩜 이렇게 멋지게 활동했을까 싶고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