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장례식을 끝내고 나서 “장래식과 퀴어의 위치성”이란 글을 썼습니다. 트랜스젠더로서, 연구자로서 장례식을 겪으며 든 고민을 정리한 글이지요. 글 자체는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때 못 다한 얘기가 많이 있지요. 앞으로 불시에 저를 찾을 것만 같은 얘기들이기도 합니다.
02
낮에 산책을 했습니다. 햇살이 너무 좋은 점심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인은 마지막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습니다. 고인과 동행했던 사람이 몇 있지만 그들 누구도 사고를 직접 목격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고 폐타이어가 구르는 소리만 들었으니까요. 고인은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고인은 전화를 하며 폐타이어가 자신을 향해 굴러오는 모습을 보았을까요? 보았다면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폐타이어를 보긴 하였을까요? 폐타이어가 자신을 향해 굴러오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을까요? 궁금했습니다. 결코 타인에게 들려줄 수 없는 그 순간, 모두가 경험할 예정이지만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그 순간, 고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햇살은 너무 좋고 바람도 적당히 불었습니다. 차도에선 자동차가 지나가고 인도에선 산책하거나 어딘가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갑자기 고인의 마지막 순간이 궁금했습니다.
03
사고 당일 저녁에야 전화를 받고 서둘러 부산으로 갔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땐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지만 의료기기를 제거하진 않았습니다. 자식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문 받을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는 이유로.
고인을 보았을 때 고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언제 흘렸던 것일까요? 자식들이 도착한 다음에? 아님 마지막 한숨을 쉬면서? 고인은 무엇을 슬퍼했던 것일까요?
04
장례식장에 머무는 며칠 동안, 한 가지 속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장례식을 치르던 그 시기는 원고 하나를 마감하기로 한 시기였습니다. 발인은 목요일, 원고 마감은 금요일. 초고는 쓴 상태였지만 수정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원고를 수정할 수 없을 듯하여 담당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마감 일정을 연기하였고요.
하지만 속상했습니다. 나는 왜 마감 일정을 지킬 수 없는 것일까, 자문하였습니다. 약속인데,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인데. 노트북만 있다면,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원고를 수정할 수 있지 않을까란 고민을 하였습니다. 프로로서 글을 써야 하는데 장례식을 이유로 원고를 연기해도 괜찮을까, 갈등했습니다. 마감 약속을 못 지키는 제가 못나 보이기도 했고요.
어찌보면 어리석거나 과도한 고민 같지만 지금도 이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시 그 상황이 되어도 전 마감 일정을 연기했을 겁니다. 그리고 다시 동일한 고민을 하겠죠. 제가 뭐 대단한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프로로서 글을 쓰고 있는데 장례식을 이유로 마감을 연기해도 괜찮은 것일까?
05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유언이며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유서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미래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허무주의가 아니라 유일하게 기약할 수 있는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이란 거죠. 현재 외에 그 어떤 시간도 가능하지 않으니까요. 삶의 우발성 앞에서 지금 이 순간 외에 의미 있는 것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하는 한 마디, 내가 쓰는 글 한 편이 마지막일 수밖에 없다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루인님이 쓰신 글에서 슬픔에 공감하는 게 규범을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하신 부분이 굉장히 인상깊었어요. 길리건이나 일부 여성주의에서 말하는 여성의 관계지향성, 공감능력과 배려의 중요성에 대한 재평가가 어딘가 불편했거든요. 그런 이론에선 개인의 내러팁나 판단의 윤리가 아닌 맥락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동시에 공감을 상황의 맥락과 상관없이 발휘할 수 있는 일종의 능력처럼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달까… 위로의 말은 서툴러서 루인 님 글에 대한 감상으로 대신할게요 ㅠ 제가 너무 엉뚱한 방식으로 읽은 게 아니었으면 해요 ;’)
비공개 님이 읽은 그 맥락에서 작성한 구절이기도 해요. 🙂
흔히 공감을 강조하지만 어떤 맥락에서 무엇에 공감하는지는 얘기하지 않고, 말 그대로 공감하는 능력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 전부터 이런 강조가 좀 불편했는데 장례식장에 있으니 어떤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글 읽어주셔서, 댓글 남겨 주셔서 고마워요. 🙂
고인께선 아마도 폐타이어를 보지 못하셨을테죠. 큰 고통 없이, 큰 미련 없이 미지의 세계로 훌훌 털고 떠나셨으면 좋으련만…
…그 상황에 원고 마감은 누구에게도 무리였을거예요. 그 때 원고를 마감하셨더라면, 평생의 후회를 남기셨을지도 모르죠. 부디 자책하지 마세요.
그렇겠죠? 그때 무리해서 마감했으면 또 그것대로 후회했겠죠?
원고 마감을 미루는 것이 덜 후회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네요..
고마워요.. 미처 못 깨달은 부분을 덕분에 깨달을 수 있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