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선생님은 책과 논문을 읽는다는 건 현실에서 도피하는 일이라고 했다. 혹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책과 논문을 읽는다고 했다. 그땐 그때 나름의 방식으로 어림짐작했지만 또렷한 느낌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온 몸으로 절감한다. 몸의 괴로움, 관계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책과 논문으로 도망치는 나를 발견한다. 몸이 괴로워서, 고민이 자꾸만 몸을 흔들고 또 불안하게 만들어서 책으로, 논문으로 도망치고 더 열중해서 읽으려 애쓴다.
몸이 괴로우면 자는 걸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나도 한때 그랬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그 상실감 혹은 공백을 감당할 수 없어 잠으로 도망치는 일은 오래 전에 그만뒀다. 대신 책으로, 논문으로, 혹은 일거리로 도망쳤다. 어쩌면 내가 읽은 텍스트의 팔 할은 내 심란한 고민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회피하려는 힘으로 공부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심란하거나 조금 괴로운 고민에 몸이 짜부라질 것 같아 조금은 억지로 책에 집증하려 한다. 텍스트에 빠져드는 순간만은 그 고민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고민을 풀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고.
무더운 여름이다. 정말 무더운 여름이다.
지금 읽는 책(<혼자 책 읽는 시간>)에 이런 문구가 나와요.
“말은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 시릴 코널리, <조용하지 않은 무덤>”
물론 전 이 말에 찬성하지 않지만요 ㅋ
책은 정말이지 온전한 도피입니다 ㅋ
저도 그 말에 딱히 찬성하진 않지만..흐흐흐
책은 정말 온전한 도피처예요. 크크크
그러고 보면 저는 언제까지 도피하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