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순찰의 일상, 혐오와 묵인 사이

이곳에 오시는 분에게 여쭙기를 지금 살고 계신 곳에서 동네를 순찰하는 경찰을 몇 번 정도 보셨나요? 제가 대흥동에서 5년 정도 살던 시절 그 5년 동안 경찰차를 한 번도 못 본 듯합니다. 경찰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5년의 시간 동안 한두 번은 봤을 법한데 기억도 안 납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 역시 경찰차는커녕 경찰 한 명 못 봤습니다. 물론 이곳에 살기 시작한지 몇 달 안 되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인구밀집지역이고 학교도 많이 있는데 경찰서는커녕 파출소도 안 보이네요(꼭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느 게시판에서 읽은 글인데, 한국은 경찰을 불신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치안은 신뢰한다고 하더라고요. 밤 늦은 시간, 혹은 새벽에 거리를 안전하게 활보할 수 있는 나라는 몇 안 된다면서요. 누구의 입장에서 안전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려나 대체로 치안이 잘 되어 있는 편이긴 합니다. 거리에 경찰이 없어도 안전하다는 막연함이 있을 정도니까요.
이 뜬금 없는 글을 쓰는 이유는 이태원 경험 때문입니다. 이태원에 장기 거주하셨다면 알고 계실 겁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경찰을 마주한다는 점을. 이태원지하철역 출구에 이태원경찰서가 있어서는 아닙니다. 저의 경우 하루 두 번은 그 앞을 지나치기 때문에 경찰을 자주 마주한다고 느낀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 알바를 하러 가는 길이건, 늦은 저녁 집에 들어가는 길이건 거리를 순찰하는 경찰차나 경찰을 하루에 한 번은 꼭 마주쳤습니다(주말엔 미군 헌병 무리도 마주하고요). 싸이렌을 울리며 긴급출동하는 경찰차를 보는 것도 낯선 일이 아닙니다. 이태원에서 경찰의 방범 행위는 일상에 스며 있습니다. 어떤 날엔 취객과 경찰이 대치한 장면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 취객은 이태원에 거주하는 사람인지, 길바닥에 누워선 자신에게 무기가 없다는 걸 알리려는 듯 두 팔을 들고 있었고요(미국 영화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었습니다). 전 경찰의 검문이 부당하다고 싸울 줄 알았는데 조용히 누워 있는 모습에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또 어떤 날엔 그냥 동네 주민 싸움인데 경찰이 출동하거나 순찰 중인 경찰이 개입하기도 했습니다. 주민의 삶에 경찰의 개입, 순찰은 그냥 일상입니다.
이태원이 어떤 공간인지 이보다 더 잘 표상하는 일도 없는 듯합니다. 관광특구이고 다문화지역이고 하는 말, 다 좋아요. 하지만 공공기관에게 혹은 공권력에게 이태원은 우범지역이며 위험지역입니다. 하루에 몇 번 씩 정기적으로 경찰이 순찰을 돌아야 하는 지역입니다. 물론 모든 이태원 지역을 이렇게 순찰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살았던 구역이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혹은 이슬람 사원이 있고 아랍 계열과 중국 계열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서 순찰이 잦은지도 모릅니다. 이건희가 살고 있다는 한남동에도 이런 식으로 순찰할까요?(아, 그들을 경호하려고 순찰이 잦을 수도 있겠네요). 만약 이태원의 특정 구역에만 순찰이 잦고 또 정기적이라면 단순히 유흥지역이라서가 아니라 계급과 인종/민족 혐오가 함께 하는 거겠죠. 빈민지역 혹은 여러 인종이 함께 있는 지역은 치안에 위험이 있다는 식의 복잡한 편견과 혐오가 기저에 흐르고 있는 거겠죠.
이태원은 복잡한 문화가 얽혀 있지만 그런 만큼이나 혐오와 경계도 깊은 곳이란 느낌입니다. 물론 그 혐오와 경계를 표출하는 방식이 좀 다를 뿐인 거죠. 그래서 이태원은 어떤 방식으로 방문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동네로 기억될 듯합니다. 주말 게이바를 찾기 위해서냐 이국 음식을 먹기 위해서냐 이슬람 사원을 구경하기 위해서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겠지요. 어떤 구역에서 거주하냐에 따라서도 전혀 다른 동네로 기억할 테고요. 제게 묻는다면 경찰의 순찰이 일상인 동네라고 답하겠습니다. 트랜스젠더 업소, 게이힐, 후커힐의 공존보다 더 인상적인 풍경은 경찰이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순찰이니까요. 언젠가 이 지점에서 글을 써도 좋겠다 싶어요.
*
설 연휴(?) 대비 예약발행한 글입니다.

4 thoughts on “이태원, 순찰의 일상, 혐오와 묵인 사이

  1. 글쎄요. 혐오라고 하기에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해당 지역은 살인사건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실제로 우발적인 사고가 많이 일어나던 곳입니다. 그냥 길을 걷기만 해도 외국인들이 시비를 거는 일이 잦았고요. 작년부터 이른바 뜨는 동네(?)가 되면서 그런 풍경은 많이 사라졌지만 (확연히 잠잠해진 것을 느낍니다.) 순찰을 많이 돈다고 해서 그 기저에 혐오가 깔려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1. 글쎄요. 범죄의 관리와 통제가 계급, 인종, 성적지향, 젠더정체성 등과 매우 밀접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냥 당연한 일은 아닌 듯합니다. 이태원이 정말 사고가 많은 지역인지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고, 지역의 특징에 따라 사건사고가 어떻게 관리되고 통제되는지도 더 면밀히 조사될 필요가 있으니까요.

  2. 루인님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하면서, 덧붙이고 싶은건
    저는 해방촌에 살았었는데 거기도 경찰을 수시로 볼 수 있던 곳이었어요.
    거기도 외국인이 많이 살아서 그런게 있었지만 또 무시할 수 없던게
    미군부대의 존재였죠.
    물론 미군부대도 유색인종이 많은 곳이라 루인님의 문제의식에 포함되긴 하지만
    군대라는 특수성을 고려해보면 순찰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 더 재밌는 얘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아, 또 저는 여행중인 사람인데
    외국인으로서 때때로 처하게 되는 어떤 위치때문에
    경찰이 너무도 반갑게 되고 안정감을 주게 됩니다.
    저랑 같이 여행하던 ‘여성’여행자는 더 그렇더군요.

    순찰,치안 등등에 대한 고민이 많던차에
    이런 글을 보게 되서 반갑네요.

    1. 의견 고마워요! 들깨 님의 지적에 공감하고요.
      순찰과 치안이 배치되는 방식, 구현되는 맥락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에서 촉발한 글인데, 이렇게 좋은 의견을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