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전략 혹은 그런 글쓰기를 훈련하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작년과 올해 초에 쓴 여성범주논쟁 관련 글에서, 제가 페미니즘의 역사로 설명한 이론가들 대다수가 퀴어이기도 합니다. 다만 글 전개에서 굳이 밝힐 필요가 없어 언급하지 않았고 글의 효과를 위해 일부러 언급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버틀러는 그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설명하지만 많은 이들이 퀴어이론가로 부르는 것처럼, 퀴어이자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때때로 ‘퀴어’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이 경우 페미니즘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논의임에도 ‘페미니즘 vs 퀴어이론’이란 말도 안 되는 이항대립에 따라 퀴어이론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반응하고요. 혹은 ‘그건 그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퀴어이론가라서 그렇다’는 식으로 반응하거나요. 전 그 이론가가 페미니즘 이론 맥락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설명하고 싶은데 ‘퀴어’란 수식어를 사용하는 순간 제 설명이 실패할 수밖에 없겠다 싶어 일부러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쓰고 있는 글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며 시작했습니다. 단적으로 얘기해서 버틀러는 언급하지도 않고 인용하지도 않으려고 했습니다. 버틀러라는 이름이 가지는 묘한 효과가 있거든요. 섹스-젠더 개념 논쟁에서 버틀러의 매우 중요한 위치와 논의를 다루려고 하지만, 버틀러를 논하는 순간 비퀴어/비트랜스페미니즘과는 무관한 논의로 취급하는 어떤 분위기가 있으니까요. 특히나 퀴어 이슈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가 다수인 듯한 저널의 특성을 감안할 때 버틀러를 언급하는 순간, 제 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겠다는 염려를 했습니다. 물론 버틀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지요. 어떻게 버틀러를 언급하지 않고 섹스-젠더 논의, 주체 구성 논의를 전개할 수 있겠어요. 아울러 제 논의는 이미 트랜스젠더 이론을 밑절미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아웃! 크.
예전엔 이런 식의 누락이 문제라고 이해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의 페미니즘과 여성학에서 논하는 많은 이론가가 퀴어이기도 한데 이 사실은 누락된다는 점에서, 한국여성학의 이성애(중심)주의를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고의로 누락하는 전략을 고민하면서, 누락이 반드시 배제는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야 할 얘기를 누락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저 특정 범주 명명만 언급하지 않을 뿐인 거죠. 그럼에도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닙니다. 진정 이런 전략 뿐인가,라는 어떤 유쾌하지 않은 상태가 몸 한 곳에 머물러 있으니까요.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은 걸까요…
상관 없는 이야기라 댓글 달기 죄송해지지만, 이거 보셨나요??
http://pal.assembly.go.kr/law/readView.do?lgsltpaId=PRC_O1T3D0E2O2R0Q1V0Z2Z4O1V5F5S5S8#a
의견 게시판에 반대 밖에 없어요. ..
더 황당한 건, 그 반대 게시물을 열어보면 알맹이가 없다는것.
알맹이가 있는 반대라면 그래도 이해라도 갈 텐데.
앗.. 지금 봤어요.
의견이 활발하..기는커녕 그냥 동원했네요.
댓글을 보니 참신한 반대는 없고 그냥 뻔한 거라.. 뭔가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른 한편 이런 뻔한 논리가 가장 잘 먹힌다는 얘기기도 하겠죠? 흠…
아, 정말 그런데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아요. 아마도.? ㅎㅎ
정치적 / 마케팅적으로 효과적인 것과 적어도 내 자신의 윤리관에 맞는 행동이 어긋날 때 정말 괴로워요.
말하지 않은 것 뿐이니까, 거짓말 한 건 아냐 – 라는 말, 틀리진 않지만,
들으면서 화가 났던 기억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그쵸? 그저 말하지 않은 것뿐이지만, 이를 통해 내가 하려는 얘기를 좀 더 잘 전달하고 싶은 건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으니까요..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