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매력적인 이론가로 남기는 힘들다. 과거엔 열광했는데 이후 발언에 실망하며 비판적 각을 세울 때가 있다. 물론 여전히 좋아하는 감정은 남아 있지만 더이상 열광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감탄하고 열광하는 이론가 중 한 명이 수잔 스트라이커다. 스트라이커가 처음으로 학술지에 쓴 글에서, 자신이 겪은 사라짐을 얘기한 적 있다. 의료적 조치를 하기 전엔 비트랜스 이성애자 남성으로, 의료적 조치를 한 이후론 비트랜스 레즈비언 여성으로, 어떤 자리에선 부치로, 어떤 자리에선 그냥 여성으로… 그렇게 트랜스젠더 범주가 사라짐을 얘기하며 자신의 삶과 범주를 고민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고 여전히 몸을 치는 구절이다.
나 역시 스트라이커가 얘기한 경험과 유사할 것이다. 의료적 조치를 하기 전엔 그럭저럭 안전한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나의 의도 혹은 나의 해석체계와 무관하게 나를 해석하는 사회적 의미체계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연애는 위험을 내재한다. 중간에 내가 의료적 조치를 시작한다면 우리의 관계는 안전하다고 여기는 관계에서 위함한 관계로 변한다. 이 찰나, 관계가 위함해지는 찰나에 나의 트랜스젠더 범주는 가장 분명한 가시성을 획득한다. 트랜스젠더가 가시적일 때 위험해진다는 뜻이 아니라(기본적으로 이 말 자체는 옳은 편이지만) 위험한 상황으로 변하면서 레즈비언 mtf 트랜스젠더라는 나의 범주가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뜻이다. 위험 상황은 나의 가시성이다. 스트라이커는 이 지점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지점을 놓친다.
사람들이 트랜스젠더 이슈에 있어 이 정도를 고민하고 파악하고 있기를 기대할 순 없다. 그저 내 블로그에 오는 분들이라면 트랜스젠더 이슈에 혹은 나에 관해 조금은 다른 감수성이기를 기대할 뿐이다. 몇 분이 ‘자신이 실망시켰구나’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니다. 그 분들 모두 내가 좋아하는 분이니까.
지난 글에 이어 계속하자. 어쩌면 아래 트윗이 블로깅을 하도록 했다. 그전까지는 그냥 웹의_흔한_트윗.twit으로 취급할 수 있다. 정말 다양한 얘기가 많잖은가. 혐오와 호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무수한 말들. 듣는 사람은 불쾌한데 말하는 사람은 호의거나 그냥 자기 주장이거나. 암튼 두 개의 이어지는 트윗이다.
기본소득 지지하는 허클
@luddite420
@ysimock 약간 다르지만 여성은 아니고 남성의 사례는 있습니다. 남성인데 자신의 성정체성을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수술은 안하지만 트랜스젠더라고 생각하고 있죠. 또한 여성을 좋아하니 레즈비언이고. 관련단체에서 활동도 하시고 책도 내시고 등등
기본소득 지지하는 허클
@luddite420
@ysimock 한겨레기사 대담에도 몇번 나오셨고 무엇보다 홈페이지에 관련 자료에 대해 자세하게 글을 올리시죠. 글도 잘 쓰시고. 홈페이지는 https://runtoruin.com 루인이란 이름으로 활동하십니다.
정확하게 나를 지칭하는 트윗이다. 나를 언급하는 트윗에 내가 직접 반응하는 것이 적절한 걸까 싶어 망설이기도 했다. 우연히 접하고도 며칠을 고민하다가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남성의 사례라니.. 문제를 삼으려면 문장 하나하나 다 문제 삼을 수 있다. 다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려면 또 다 넘어갈 수도 있다.
처음엔 그냥 재밌었다. 무엇보다 내가 어떤 식으로 소비되고 유통되는지 알 수 있어서 혼자 깔깔 웃었다. 재밌어서 블로깅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냥 재밌지는 않다. 이유는 앞에서 계속 적었다. 저자의 기획과 독자의 독해는 별개의 문제란 점에서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그저 꼭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방법 뿐이었을까, 내가 얼마나 부족하게 적었나라는 고민을 놓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이런 식의 표현은 내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기도 했다. 그나마 트랜스젠더라고 떠드는 내게도 여전히 남성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어떻게 표헌할까?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ysimock의 트윗에 이어진 일련의 트윗이 트랜스젠더에 우호적이거나 호의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 반대다. 상당히 부정적이다. 혹은 어설프게 아는 척하거나. 이 지점에서 좀 더 화가 나는 건, 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비규범적 존재는 아무렇게 말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이를테면 양자역학이나 위상수학, 칸트 철학에 있어선 아무렇게 말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상당히 조심스럽게 얘기하거나 일단 배우는 자세를 갖는다. 하지만 여성학/페미니즘이나 퀴어/트랜스젠더 이슈에선 누구나 아무렇게 떠들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나’가 관건이 아니라 ‘아무렇게’가 관건이다. 그 어떤 이슈에도 아무나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일련의 트윗을 읽으며 일단은 두 가지만 말하기로 했다. 첫째, 트랜스젠더 이슈를 말하기에 앞서 트랜스젠더를 문제 삼기보다 트랜스젠더를 신기한 대상으로 삼는 인식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둘째, 트랜스/젠더/퀴어 이슈를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건 좋지만 아무렇게 말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유념하면 좋겠다. 사실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각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학에서 요구하는 윤리를 트랜스젠더 이슈에도 대입하면 되는, 매우 간단한 일이다.
‘위험한 관계’ 라는 표현은 여러 가지 의미 내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그나저나 슬쩍 넘어가셨지만, 문제의 그 트윗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은 글을 잘 쓰신다는 언급이라 사료되옵니다…
그쵸? 이미 농담으로 하고 있는 그 표현(ㅂㄹ)을 포괄하기도 할 거고요.. 흐흐흐
댓글에서도 슬쩍 넘어가겠습니다… …
http://en.wikipedia.org/wiki/Girlfags_and_guydykes
첫 두 줄………………………………………………………………………………………음……………………. .
fag hag에서 다양한 변형과 다양한 언어가 등장했네요… 흐흐.
그럼 전 transgirldyke라고 하겠습니다.. 후후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적인 판단은 중요하다 믿는 1인이에요 ^^
mtf가 호르몬을 투여하면서 얻는 여성적 특질
ftm이 역시 얻게되는 남성적 특질이 존재하죠
이 화학 반응은 어떠한 심리적 특질 보다 우선한다 믿어요. 아니, 호르몬이라는 화학물질은 심리에도 깊이 관여하죠. 실제 성격 변화가 생기니까요.
대중이 남성과 여성의 특질을 판단하는 건 이런 역사적, 경험적인 사실들이 관여하죠. 사실이 늘 진실은 아닐지라도요. 🙂
사실 아직 대중에게 젠더퀴어라는 그 이상의 세그먼트를 설명하는 것 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에요. 물론 그것이 의미 없는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하리수씨류의 서사가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지만요 ㅋ
정리하자면, (1) A라는 개념을 설명하기에도 벅찬데 A’와 A”와 A”’를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대중에게 소구점이 있을 것인지, (2) 그것이 A라는 큰 범주에 대한 편견을 더 조장할 수 있는 게 아닐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전 개인적으로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게 우선이고, 이후에 확장을 하는 게 전략적이라 생각하지만, 뭐 그건 제가 큰 A라는 범주의 사람이니 어쩔 수 없겠죠… ‘ㅅ’
덧) 제 경우엔 꽤 오랜 시간 동안 A”로 살았어도 큰 범주의 A라 정체화 하고, 이런 문제를 인지하지 않은 무감도 작용했지만요 -_-;;
저 역시 호르몬의 효과를 더 섬세하고 자세하게 말해야 한다고 믿어요. 문제는 호르몬 효과과 없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호르몬이 전부라고 말하는 것도 문제라고 믿는달까요. 호르몬이 혹은 몸의 어떤 생물학적 기능이 성격부터 다양한 부분에 영향을 끼친다고 해서 그것이 문화적 해석에 동떨어진 상태로 기능하진 않으니까요.
가끔은 아니, 갈수록 트랜스젠더 개념을 설명하는데 애쓰기보다 비트랜스젠더를 문제 삼는 게 더 낫다고 고민하고 있어요. 트랜스젠더 개념은 아무리 정교하게 설명해도 늘 실패하기 마련이고 종종 트랜스젠더와 비트랜스젠더를 무관한 존재로만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의 방향을 바꿔야하지 않을까 해요.
그나저나 A, A’, A”, A”‘는 각각 무엇일까요? 흐흐.
이를테면 양자역학이나 위상수학, 칸트 철학에 있어선 아무렇게 말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상당히 조심스럽게 얘기하거나 일단 배우는 자세를 갖는다. 하지만 여성학/페미니즘이나 퀴어/트랜스젠더 이슈에선 누구나 아무렇게 떠들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나’가 관건이 아니라 ‘아무렇게’가 관건이다.
동감해요. 사람들은 ‘분야’에도 위계가 있다고 믿는지도 모르겠어요.
그쵸? 사람들은 분야에도 학제에도 위계가 있다고 믿고 그래서 정말 아무렇게 떠들어요. 그 지점을 따로 한 번 논해도 재밌을 텐데요.. 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