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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절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특별히 친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끔 만났고 만나면 별 말 없었다. 많은 시간, 침묵을 공유했다. 침묵을 공유할 수 있어 만났는지도 모른다. 침묵을 공유하기 위해 만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잘 몰랐다. 간헐적으로 한두 마디를 나누는 것으로 서로의 일상을 짐작할 뿐이었다.
침묵을 공유했기에 약속을 잡아 만나지도 않았다. 그저 우연히 만나면 합석했고, 각자의 침묵 속으로, 혹은 각자의 일에 몰두했다. 그러다 별다른 인사 없이 누군가 먼저 일어나기도 했고, 내키면 같이 밥을 먹기도 했다. 어떤 날은 한두 시간 함께 걷기도 했다. 그가 나의 집을 안 것도 그때였다. 말없이 같이 걷다가 나는 집으로 왔고 그도 함께 했다. 그가 세 번째 왔을 때 처음으로 그에게 냉파스타를 대접했다. 그는 묵묵히 먹었고 맛있다거나 맛없다거나와 같은 얘기는 없었다. 그저 내가 음식을 준비할 때면, 가끔 냉파스타를 먹자고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 때 그는 이민을 간다고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야 할 필요도 못 느꼈다. 침묵을 공유할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쉽기는 해도, 침묵을 반드시 공유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아울러 함께 있어야만 침묵을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 방식을 통해 침묵을 공유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그가 이민간다는 얘기에, 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비행기를 타던 날 공항에 나가지도 않았다. 이제 만날 수 없으면 그것으로 족했고, 만난다면 또 그것으로 족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몇 년에 한 번 입국해서 내 집에 머물렀다. 짧으면 열흘, 길면 서너 달 정도를 머물다 갔다. 특별히 무슨 일을 하지도 않았고 어딘가로 외출하지도 않았다. 그냥 머물렀다. 약속이라도 한듯 생필품은 그가 채워넣었고 나는 그가 있는 걸 신경쓰지 않았다. 달라진 건 그저 이인분의 음식을 하는 것 뿐이었다. 그는 존재감 없이 머물렀다. 그러다 돌아가야겠다고 결정을 하면, 별다른 말 없이 떠나곤 했다.
그것도 사오 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그가 사오 년 동안 오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가 내게 왔을 때야 깨달았다. 그가 오지 않았다면 우리가 사오 년 동안 연락이 없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 했을 거다. 그리고 내가 많이 지쳤을 때 그가 내게 온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사는 방식에 지쳤거나 퍼지기 시작할 때, 어떻게 알았는지 그는 나를 찾아왔고 며칠, 혹은 몇달 동안 내게 머물렀다. 그가 함께 있다고 해서 특별히 더 힘이 나거나 하진 않았다.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침묵을 공유할 직접적 대상이 있다는 것 외에,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떠날 때면 조금은 기운을 차리곤 했다. 그가 떠나서 기운을 차린 건지, 기운을 차릴 즈음 그가 떠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