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하겠다고 다짐한 일은 다 못 했지만 어쨌거나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고, 8월에 투고한 글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트랜스젠더와 감정의 정치에 관한 글인데, 이제까지 내가 쓴 다른 글처럼 잘 쓴 글은 아니다. 우연히 글을 출판할 기회를 잡았고 그래서 다른 주제로 고민하다가 결국 감정의 정치를 투고했다. 찜찜하지만, 다른 주제로 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 새로운 글이 나올 때마다 묘하게 죄의식을 느낀다. 죄책감인가? 꼭 이런 식이어야 하나, 꼭 이래야 하나… 혹은 나는 왜 늘 이 정도 밖에 못 할까… 부끄럽지 않아야 하는데 글이 나올 때마다 부끄러움이 쌓인다. 그런데도 글을 쓴다. 오늘도 이런저런 짬을 이용해서 투고할 원고 초안을 작성했다. A4 두 장 분량이니 긴 글은 아니다. 글을 시작하기까지는 많이 귀찮았는데 쓰기 시작하니 또 어떻게 진행된다. 피동형이다. 어떻게 진행된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내 고민이 형성된다. 고민이 농축되었을 때 글을 쓰기도 하지만 고민의 방향을 잡기 위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사건을 이해한다. 이번 글의 주제는 지난 8월에 있었던, 돈을 내지 않고 여자목욕탕에 들어갔던 mtf/트랜스여성의 일이다. 그 사건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방법은 여든 세 가지다. 나는 그 중 한 가지를 쓸 뿐이다. 그러니 충분한 내용도 아니고 풍부한 내용도 아니다. 그저 내가 이 기사를 통해 이해하고 싶은 걸 뽑아낼 뿐이다. 그것이 윤리적으로 그릇된 태도일 수도 있다. 기사의 주인공을 타자로 박제하는 나쁜 짓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뭐라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쓴다. 위험하다. 위험하면 중단해야 하는데 중단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시작된다. 글을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