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 혹은 ‘진부’한 이야기

01. 레즈비어니즘과 페미니즘은 연대할 수 있는가, 란 질문이 문득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전까진 감각하지 못하다가 월요일부터 시작한 책과 놀다가 떠올랐다. 구체적으로 뭐라고 설명은 못하겠는데, 일테면 “여성과 인권”이라는 말이나 “여성운동과 시민운동”이란 말처럼 다가왔다. “여성과 인권”은 ‘여성’은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여성운동과 시민운동”이란 말은 ‘여성’운동은 시민운동이 아니란 의미다. 딱 이런 의미란 건 아닌데 이런 말을 들은 것처럼 불편하게 다가왔다. 기다리면 언젠간 불편함의 의미가 다가오겠지.
불편함의 의미를 알아간다는 건, 승려들의 화두 같다고 느낀다. 잠시도 놓지 않고 몇 년씩 고민해도 알 수 없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닫는 화두처럼 불편함의 의미를 알아 가는 과정도 그렇기에.

02. 케이트 본슈타인Kate Bornstein의 [젠더 무법자Gender Outlaw]를 읽다가 밑줄 그은 문장:
그들(이성애 ‘남성’-루인 주)은 “레즈비언들은 파트너와 어떻게 (성행위를) 하나”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은 정말 슬픈 질문이다. 그것은 여성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M_ +.. | -.. | 살짝 의역했다. 책에선 “그들”이 이성애 ‘남성’이지만 꼭 ‘남성’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질문은 성행위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음에도 ‘답변’에선 “관계”로 번역한 건, 이 문장이 들어있는 챕터의 전체적인 맥락이 소통과 언어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지점이 이성애 성기 중심주의지만 동시에 그것은 권력과 소통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문득, 검색어가 두려워 진다-_-;;)_M#]

03. 언제쯤 이반, queer란 키워드를 두고서도 트랜스를 별도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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