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추세로 추정한다면 그러니까 최소 5년 정도만 지나면 나 따위는 비교도 안 될 끝내주는 트랜스젠더퀴어 이론가가 여러 명 나올 것 같다. 학제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를 공부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을 몇 명 알고 있기도 하고. 그러니 정말 기쁜 일이다. 보잘 것 없는 얘기를 하는 나 따위 뭉개버리라고! ..라기엔 뭉갤 것도 없이 그냥 각자 관심 분야에서 꾸준히 자기 연구를 하겠지. 흐흐.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잊히겠지. 꺄르르.
이 와중에 흥미로운 점은 학제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 분, 다수가 기존의 트랜스젠더 사사에 부합하지 않는 자신의 삶을 얘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mtf/트랜스여성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여성으로 자신을 인식했고 운운하는 전형적 서사. 이 서사에 갈등하는 분들이 상당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갈등이 공부를 하는 동력을 만들고 있다. 공부를 하는 동력이 반드시 이런 갈등의 언어화는 아니겠지만 좋은 자극제인 것 같긴 하다. 그러니 이를 통해 다양한 트랜스젠더 이론이 등장하고 트랜스젠더 이론의 논쟁이 가능하겠지.
그러면서 든 고민은 학제에서 공부하겠다는 분 중에 기존의 트랜스젠더 서사에 부합하는 분은 별로 없다는 것. 물론 이것은 당연히 내가 아는 수준의 경향이다. 내가 아는 수준의 경향을 일반화하면 곤란한 건, 내가 주장하는 바가 있고 그 주장에 공명하는 분이 나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와 공명하는 점이 별로 없다면 내게 말을 걸거나 연락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리하여 내가 아는 수준에서, 기존의 서사에 부합하지 않는 트랜스젠더가 학제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바로 그 목소리, 바로 그 경험이 트랜스젠더 논의를 대표한다고 오인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경향이 불편을 느끼는 또 다른 트랜스젠더와 어떤 식의 논쟁이 생기기도 하겠지. 이렇게 된다면, 그래서 만약 생산적 논쟁으로 이어진다면 정말 즐거울 듯하다. 물론 바로 그 순간엔 괴롭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말 즐겁겠지. 하지만 만약 이 논란이 논란으로 끝나고, ‘너희는 책만 파고 현실을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반응한다면? 이것이 내가 상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런 식의 논쟁은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를 두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나는 트랜스젠더를 정의할 때, ‘정신적/사회문화적 성(소위 젠더)과 육체적 성(소위 섹스)이 다르거나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란 정의에 매우 비판적이다. 이런 정의는 모든 문제를 트랜스젠더 개인의 것으로 돌린다. 이 사회는 변할 필요 없다. 개인의 갈등, 개인의 불일치만 의료로 해소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트랜스젠더란 태어날 때 지정받은 젠더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젠더를 인식하는 사람이며 섹스는 각자의 해석에 따른다’로 설명하길 선호한다. 나는 젠더가 태어날 때 사회문화적 해석에 따라 지정받은 것이지 섹스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아울러 젠더가 사회문화적 해석에 따른 지정이란 점에서, 문제는 이 사회의 변화란 것을 강조하려 한다. 개인의 불일치가 갈등 경험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정치학과 달리, 적잖은 트랜스젠더가 ‘정신적 성과 육체적 성이 일치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이란 설명을 선호한다. 그리고 이런 설명이 자신의 경험을 잘 설명한다고 느낀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논쟁을 할 수도 있다. 어느 한쪽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이 논쟁을 통해 트랜스젠더의 다양한 경험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핵심이고.
아무려나 지금은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시기다. 앞으로 많은 일이 일어날 테니까. 정말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