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퀴어한 삶을 지향하는 경우는 많다. 비록 퀴어포비아가 만연한 사회에서 퀴어로 혹은 퀴어하게 산다는 것은 어떤 위험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위험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퀴어한 삶, 지금보다 더 퀴어한 삶은 많은 경우 좋은 의미로 통용된다. 지향해야 할 삶의 방향 중 하나로 독해된다.
지금보다 장애가 더 심각해지길 바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장애인 역시 장애를 세상을 인식하는 주요 토대로 사유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장애가 더 심각하길 바란다고 쉽게 말하진 않는다. 장애와 퀴어 모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긍정적 가치, 지향할 삶의 방향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더 퀴어하게’와 ‘더 장애가 심하게’는 그 의미가 같지 않다.
나는 장애 이슈와 퀴어 이슈를 분리해서 사유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장애-퀴어 이슈를 동시에 사유하기 위한 출발점은 앞서 쓴 지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 퀴어하게’와 ‘더 장애가 심하게’가 동일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 지점에서 장애-퀴어의 상호교차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럼 어떻게? 물론 이건 앞으로 더 고민할 부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