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심리적 여유가 생겨서, E가 관심이 많은 베어그릴스(Man vs. Wild)를 몇 편 봤다. 경기버스를 타면 단편적 모습만 볼 수 있어서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국내 방영분 몇 편을 머리 식히고 싶을 때 조금씩 봤는데… 아아, 나는 결코 저런 삶을 살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언젠가 한 번 정도는 저런 경험을 해봐도 재밌지 않을까라는 다소 진부한 감상.
그러니까 이를 테면 물뱀을 잡아서 이빨로 머리를 떼어 낸 후 꿈틀거리는 몸을 날로 야금야금 먹고 난 다음, 아침을 먹었으니 걷겠다고 한다거나. 고목을 해체하며 벌레를 찾다가 안 나오니까 밥을 먹는데 실패했다고 말한다거나. 죽은 동물의 몸에서 기어다니는 구더기를 보며 좋은 단백질이라고 먹는다거나. 이미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그런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떠들고 싶은 감정으로 봤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카메라촬영인을 가장 많이 의식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선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주인공과 동일한 환경을 다닌다는 점에서 더 대단하기도 하다. 때론 더 고생이기도 하고. 그래서 베어그릴스보다 카메라촬영인이 더 대단하고 카메라를 가장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카메라촬영인을 가장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베어그릴스일 수밖에 없다는 느낌도 든다. 이유는 단 하나. 이 프로그램은 방송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마구마구 떠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속사포처럼 얘기하는 노홍철처럼. 흐흐흐. 베어그릴스 역시 밤에 자다 말고 일어나 셀프 카멜라를 켜고 떠드는 식으로 현재 상황을 적절히 설명하고 긴장감을 줄 말을 끊임없이 한다. 방송이란 측면에선 이것이 중요하다. 베어그릴스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많지는 않아도 분명 여럿일 테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에서도 방송을 위해 적절한 대화를 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것이 카메라촬영인과 베어그릴스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베어그릴스는 생존 방식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하겠지만, 방송의 역할이나 방송 구조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아무려나 꽤나 재밌다. 어릴 땐 늘 집을 나가서 떠도는 상상을 하며 살았기에, 그 시절의 상상을 자극하기도 해서 흥미롭기도 하고. 물론 집을 나가 떠돌아다니는 삶이 결코 편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더 이상 그런 꿈을 꾸진 않는다. 그럼에도 언젠가 한 번 정도는 너무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베어그릴스의 가벼운 판본으로 비슷한 경험을 해보고 싶기는 하다. 물론 몇 시간 안 지나 후회하겠지만. 흐흐흐.
캠핑!
을 갈까요? 물론 버너와 코펠로 밥해먹고 텐트에서 자는 거지욤!
응! 좋아요. 헤헤헤. 나중에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