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이 변하길 중단한다면, 그건 존재하길 중단하는 겁니다.”
이것은 샌디 스톤이 수잔 스트라이커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며, 스트라이커의 책 <트랜스젠더 역사>(가제)에 실린 구절이다. 스트라이커의 책을 번역하는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이 구절을 읽다가 어쩐지 감동을 받았다. 어떤 주석도 덧붙이고 싶지 않은 깔끔한 표현이다. 나는 매일 변하고 그래서 내 범주, 내 정체성도 매일 변한다. 이것을 중단시키겠다는 욕망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욕망, 살아 있기를 중간하겠다는 욕망이다.
번역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어떻게든 이번 달에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길 수 있을 듯하다. 많이 늦었네. 부끄럽다. 그래도 스트라이커의 한국어판 서문도 받았다. 아울러 이런저런 역자의 각주도 스무 개 가량 작성했다. 처음엔 역주가 없는 번역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단순히 언어 번역이 아니다. 한국에서 떠드는 트랜스젠더 이슈를 모르는 사람도 수두룩한데 미국의 트랜스젠더 이슈와 맥락을 아는 사람은 더 적을 수밖에 없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내 전공이 아닌 분야의 책을 읽으면 맥락을 몰라서 버벅거릴 때가 많다. 나 역시 미국의 트랜스젠더 이론 지형을 모르지만, 그래도 몇 개 읽은 가닥으로, 그 어쭙잖은 가닥에 빌붙어, 어쨌거니 이런 내가 번역에 함께 하니 미국의 이론적 맥락을 추가하는 작업을 했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익숙할 법한 내용은 스트라이커가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간 경우도 적잖아서 번역자가 이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글을 읽기 어려운 부분도 몇몇 있고.
내 글에선 각주를 작성하지 않는데도 번역에선 역주를 작성했으니, 역주 자체를 읽을거리로 만들려고 애썼다. 단순히 한두 줄의 간단한 설명이 아니라 전후 맥락을 살피는 식으로 쓰려고 애썼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오류도 여럿 있을 것이고 역주의 오류는 명백하게 나의 잘못이다. 아울러 당연히 충분하지 않다. 어떤 것은 역주를 작성하려 했지만 내용이 좀 길어질 듯해서 뺀 것도 몇 개 있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나름 역주에 애를 썼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번역하고 있으니, 읽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랄까. (스트라이커는 이런 나의 마음을 알까… *발그레*)
암튼 출판사에 넘기면 후속 작업이 또 많겠지. 죄송해요, 편집자님. 그런데 편집자가 누군지 모른다…;;; 암튼 어떻게 잘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