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의 유명한 대목에서 1942년 프랑스의 어느 젊은이가 처한 딜레마를 그려 보인다. 젊은이는 의지할 곳 없고 노쇠한 어머니를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와 레지스탕스에 들어가 독일군과 싸워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 고뇌한다. 물론 사르트르의 논점은 이 딜레마에 선험적인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한한 자유만을 근거로 삼아 결정을 내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떠맡아야 한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난 외설적인 제 3의 길은, 어머니에게는 레지스탕스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레지스탕스 동료들에게는 어머니를 보살펴 드릴 거라고 말한 뒤, 실제로는 외딴 곳에 틀어박혀 공부하라고 충고해 주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폭력이란 무엇인가> 이현우, 김희진, 정일권, 옮김. 31-32쪽.
지젝에게 호감도가 +1 상승하도록 한 문구다. 무엇이 공부인지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뭔가 즉시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일단 머뭇거리면서 고민을 하는 것, 좀 천천히 발언하는 것, 더디게 개입하는 것, 뭐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일단 행동부터 하기보다는 공부를 하고 천천히 고민하는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 구절이 좋다.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