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서 네 편의 글이 모였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완성한다기 보다는 그저 모색하는 과정에 있을 뿐이에요. 그저 그럴 뿐이죠. 흑;;
첫 번째 글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혹은 관계 맺음에 대한 고민: 채식
두 번째 글은 채식주의자로 살면 불편하지 않느냐고요?
세 번째 글은 육식하는 채식주의자
―채식주의 페미니즘, 모색하며 4/4
-루인
01. 정작 낙농업을 하는 사람은 자신들이 “생산”한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유 시기에만 생산할 수 있는 우유를 일년 내내 생산하기 위해 각종 호르몬을 주사하기 때문이다. 양계장에선 하루에도 몇 번씩 알을 낳게 하기 위해, 호르몬을 주사하거나 인공조명을 이용한다고 한다. 호르몬을 맞는 젖소나 닭은 모두 암컷이다.
이 글을 쓰면서 황우석 사태를 떠올렸다. ‘여성’의 난자를 대량으로 “채취”하기 위해 호르몬을 주사하는 것과 우유 혹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호르몬을 주사하는 것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젠더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식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단면이면서 육식이데올로기와 동물살해가 젠더폭력과 얼마나 밀접한지를 드러내는 단면이 아닐까.
02. 이런 음식의 식민주의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잘 나타난다. <웰컴 투 동막골>은 육식의 ‘남성’연대, 채식/육식이데올로기가 식민주의와 맺는 관계, 육식과 군대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순박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채식주의자인 동막골 사람들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하는” 육식가 군인의 모습은 채식을 하면 성격이 순해진다거나 육식을 하면 성격이 포악해진다, 채식을 하면 힘을 못 쓴다거나 육식을 해야 힘을 쓸 수 있다는 언설들을 재현한다. 주중엔 감자 등으로 수프를 끓이지만 주말이면 꼭 고기를 넣은 수프를 끓이고 이 고기 수프 때문에 주말에만 남편도 같이 수프를 즐기며 만족한다는 내용의, 19세기 혹은 20세기 즈음에 쓴 외국 소설을 읽은 흔적이 몸에 있다. 한국 소설에서도 빈곤과 약함을 밥상이 “풀밭”이란 방식으로 그리고,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쓸 수 있다는 언설들과 함께 고기반찬이 있어야만 풍성하고 괜찮은 살림을 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도 비슷한 상황인데, 멧돼지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감자 등 채소를 주식으로 삼는 동막골 주민들이며 이런 멧돼지를 살생하는 사람들은 육식가인 군인이면서 외부인 이다. 멧돼지를 살생한 군인들은 그간의 어색하던 관계를 늦은 밤, 육식을 통해 해소하며 ‘남성’연대를 다진다.
때 묻지 않은 모습으로 지켜져야 하는 공간으로서의 동막골은 환상 속에서 그리는 고향이란 이미지와 열강 속에서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란 이미지를 가졌던 한국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공간이다. 여일(강혜정 분)의 몸은 남북이라는 이데올로기의 대리 분쟁지역, 돌아가고 싶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고향, “세상 물정 모르고 순박한” 동막골을 체현하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여일의 죽음은 군인들이 뭉칠 수 있는 확실한 계기가 된다.
요즘의 부시가 일으킨 정쟁도 과거 식민주의가 일으킨 침략전쟁도 그 명분은 ‘여성’과 아이들의 인권이다. “야만”스런 동양의 가부장제에서 억압 받는 이들을 “해방”하고 지켜주겠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웰컴 투 동막골>은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채식하는 동양의 약하고 순박한 이들을 육식으로 건강하고 강한 ‘우리’들이 지켜줘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육식 이데올로기는 다른 영화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영화 <쉬리>에서, 초반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훈련받는 군인들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최민식이 뛰어난 군인 이방희(김윤진 분)에게 고깃덩어리를 던져주며 격려하는 모습이 나온다. <왕의 남자>에서 광대들은 궁정에 들어가 가장 먼저 먹는 음식이 닭‘고기’인데 고기가 있어야만 푸짐한 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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