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룸의 성적소수자 성매매 보고서, 내가 기억하는 일의 기록

어제 “이룸 포럼: 성소수자 성매매” 행사가 있었다. 2014년에야 LGBT/퀴어의 성매매 이슈를 연구한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근대 이후 한국의 공적 기록, 출판물, 언론보도 등에서 LGBT/퀴어는 거의 언제나 성매매 이슈 혹은 그와 유사한 이슈에 엮여 등장한다. 1960년대, 거리 성매매를 하다가 잡힌 여장남자, 낮엔 남편 노릇을 하고 밤엔 남성을 상대로 성판매를 하는 남장여자, 술집에서 접대일을 하다가 여장남자란 점이 들켜 경찰서에 갔다가 훈방된 사람 등. 1970년대 이태원에서 일하고 있는 중성[트랜스젠더]의 일화들, 여성 전용 카페에서 있었던 성애적 사건들. 1980년대 에이즈가 한국의 중요한 이슈가 되었을 때 게이 업소, 트랜스젠더 업소에서 일했던 이들의 반응. LGBT/퀴어의 많은 기록물은 성매매와 겹쳐 있다. 2000년대 이전으로 굳이 갈 필요도 없다. 지금도 한국에서 트랜스젠더(정확하게는 mtf/트랜스여성)는 언제나 트랜스젠더 업소, 유흥업소, 성판매와 매우 밀접한 이미지로 재현된다.

그리고 지금.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서 LGBT/퀴어 운동이 인권운동으로 등장했다. 1990년대 초반 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서를 중심으로 한 모임이 등장하고, 2006년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가 발족했고 몇 년 뒤 해소했다. 20년의 시간, 10년의 시간. 그리고 LGBT/퀴어의 성매매, 특히 트랜스젠더의 성매매 이슈는 거의 이야기 되지 않고 있다. 미디어의 선정적 보도에선 가장 많이 재현되지만 LGBT/퀴어 운동에선 가장 이야기가 안 되고 있다. 나부터, 혹은 바로 내가 반성해야 한다. 이태원의 역사를 다룬 글 말고는 트랜스젠더와 성매매 관련해서 한 것이 없다. 지금까지 뭐했나 싶다. 변명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극소수에 불과한 트랜스젠더 활동가를 탓할 수는 없다. 나는 껠바사 터졌지만, 다들 잠을 줄여가며 건강이 상해가면서도 열심히 했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나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2009년 전후로 막달레나의 집 이태원 드랍인센터에서 이태원 지역의 비트랜스여성과 mtf/트랜스여성 성판매자를 만나고 그 지역을 연구하는 작업을 했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2008년 늦봄인가 가을인가, 막달레나의 집 활동가 주희 님과 통화를 했으니 그 전부터 작업을 진행하고 계셨고 이후로도 지속되었다. 다른 한 곳에선 이룸이 관련 작업을 진행했다. (다시 한 번)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2010년인가 이룸 활동가들이 LGBT/퀴어의 성매매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후 이룸 활동가였던 깡통 님과 통화를 하며, 국내 문헌의 부재와 외국 문헌을 찾는 이슈로 이야기를 나눴었다. 이후 이룸은 계속 사업을 했고, 2013년엔 ‘퀴어+성매매’로 강좌를 열었고, 어제 드디어 보고서를 발표했다. 최소한 5년은 걸린 사업이란 뜻이다. 내가 아는 게 극히 단편적 사건에 불과하니,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축적된 사업이란 뜻이다.

그래서 얼추 한 달 전 보고서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정말 기뻤다.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는데 가장 이야기가 안 되고 있는 이슈니까. 더구나 트랜스젠더만이 아니라, “게이 성매매, 레즈비언 성매매, 트랜스젠더 성매매”(하지만 게이와 레즈비언 성매매로 분류된 이들 상당수가 바이/양성애자다)로 연구를 하고 보고서가 나왔다.

첫 보고서가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해서 이것은 매우 대단하고 중요한 보고서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형태로건 같이 할 수 있도록 내가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함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어제 무척 부끄러웠으니까. 내가 이렇게 무지해도 괜찮을까 싶었으니까.

(어제,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업소를 찾는 성매매단체가 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와!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 프로젝트도 내년엔 관련 사업을 고민하고 있단다.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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