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서 닷새: 벨베데레 궁전, 베간즈(비건 슈퍼마켓)

ㄱ. 오늘 일정은 간결했지만 다리가 상당히 아픈 하루였다. ㅈㅇ 님을 만나 S-Bahn을 타고 이동하다가 환승할 때 반대 방향으로 가서 시간이 좀 더 걸렸지만, 아무려나 어때. 벨베데레 궁전에 무사히 잘 도착하면 좋은 것이지. 어차피 길을 잃어도 상관없는 여행이니까.
ㄴ. 역에서 내려 궁전의 초입에 들어섰을 때 멀리 연못 너머로 보이는 상궁이 무척 멋졌다. 겉모습만으로 충분히 멋졌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궁에 들어가고서야 깨달았다. 상궁은 에곤 쉴레부터 클림트의 키스를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클림트의 키스는 워낙 유명하고 이미지를 찾기가 무척 쉬워서 마음 한켠에서 꼭 봐야할까 싶었는데, 확실하게 깨달았다. 작품을 사진이나 이미지로 보는 것과 실물로 보는 것은 아우라부터 다르다는 것을. 한참을 바라봐도 지겹지가 않고 계속해서 새로웠다. 모든 방에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정말 많은 작품을 봐서 사실 뭐가 뭔지 기억이 잘 안 나기도 한다. ^^; 인상파 미술, 고전주의 미술, 신고전주의 미술, 궁의 벽화, 천장화, 궁 자체의 조각과 전시 하나하나가 인상적이었고 아름다웠다. 1층 전시의 마지막 즈음에 Jasper Johns의 ‘Regret’이란 작품을 구경했다(개요와 작품 사진은 http://goo.gl/6zeFIp). 작품의 직접적 계기를 확인하기 전까지 Johns의 작품은 정말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에칭으로 작업한 다양한 판본이, 각 판본마다 매력적이었다.
(ㅈㅇ님과 둘이서 이것이 조종석이다 운운 온갖 추측을 했다는 건 비밀…)
ㄷ. 보다가 배가 고파서 궁전 근처 가게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비건 음식 서너 가지는 반드시 있었다. 가지를 토마토 등으로 요리한 음식에 빵을 찍어 먹었는데 꽤나 맛났다. 계획 없이 그냥 들어간 가게였고, 유명 관광지 근처 자리가 좋은 가게의 경우 한국이라면 맛이 별로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작년, 강릉에 갔을 때 강릉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은 정말 맛이 없었지. 하지만 이곳은 상당히 맛있었고 ㅈㅇ님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며 느긋하게 점심을 먹었다.
ㄹ. 점심을 먹고 나서 일단 하궁을 먼저 보기로 했다. 황제의 초상화, 나폴레옹의 초상화,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 관련 그림 등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느낌은 정확하게 ‘제국의 아카이브’였다. 그것도 제국을 성찰하는 아카이브라는 느낌보다는 제국을 향수하고 이것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싶어하는 느낌의 아카이브였다. 빈의 건물 자체가 제국의 그것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점에서, 하궁은 제국의 기억을 응축하고 있고, 구체적 기록물로 증거/증언하는 곳이었다. 하궁을 지나 중세보물 전시관으로 가면…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1190년대 제작한 십자가부터 몇 백 년 전의 보물 혹은 작품이 전시된 모습은 역사 아카이브라는 측면에서 무척 탐났다. 퀴어락을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ㅁ. 다시 상궁으로 이동해서 3층의 전시를 구경하고(3층이 인상파였던가.. 헷갈리네…) 1층 중세미술 부스로 이동했는데… 시작하는 곳 Carlone Hall이 엄청났다. 벽, 천장 모든 것을 신에게 봉헌하는 느낌의 작품이었고, 방 가운데는 오래된 (다소 투박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전체 분위기는 어떤 신앙, 신에게 향하는 마음으로 가득했고, 만약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 방에서 신앙심이 상당히 고무되겠구나라는 인상이었다. 다른 많은 곳보다 이곳이 내겐 가장 인상적이었다. (파노라마는 여기서 http://goo.gl/xwNfR7 )
ㅂ. 상하궁을 모두 구경한 다음 다리가 아파서 좀 쉬었다가 근처에 있다는 비건 슈퍼마켓 Veganz(베간즈)로 향했다. 하지만 내가 지도를 전체적인 모습만 캡쳐한데다 길을 찾기도 어려워서 한참을 헤매고서야 간신히 도착했다. 재밌는 점은 많은 사람이 길을 친절하게 가르쳐주지만 묘하게 맞지만 묘하게 틀린 지점이 있다는 것. 아무려나 찾아갔는데 밖에서 보면 좁아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상당히 넓었고 식품 종류가 무척 많았다. 한국에서 파는 비건 제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종류가 많았다. 콩단백으로 만든 제품이 한가득이었고 냉동고 서너 개에 다양한 제품이 있었다. 비건치즈 역시 있었고 케익 역시 있었다. 초코와 과자가 가득했고 각종 식재료가 있었다. 예를 들어 디저트용 크림을 대신할 수 있는 비건크림 같은 것. 스무디를 만들 수 있는 제품 같은 것.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팠지만 한참을 구경하다가 물건을 잔뜩 산 다음에야 나왔다.
ㅅ. 호텔로 돌아가는 길의 아무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처음엔 케밥집에 들어갔는데 비건용이 있었다. 오오. 물론 담배 냄새가 심해서 그냥 나왔다. 오스트리아의 특징은 어디서나 담배를 핀다는 것. 놀이터엔 아이와 동행하지 않는 성인은 출입할 수 없지만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담배를 피는 모습, 길빵하는 모습은 정말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디서나 담배 냄새가… 그런데 한국처럼 독한 냄새가 아니라서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암튼 케밥집을 나와 다른 곳을 들어갔는데 역시나 서너 가지의 비건 음식이 있었고 음식 역시 맛있었다. 대충 들어갔는데 괜찮은 선택이라니! 저녁을 먹으며 ㅈㅇ와 논문 이야기, 글 주제 이야기 등을 한참하다가 점원에게 가는 길을 물어본 다음 밤 늦은 시간 호텔에 도착했다.
ㅇ. 이렇게 하루의 기록, 일기를 남기는고나.

3 thoughts on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서 닷새: 벨베데레 궁전, 베간즈(비건 슈퍼마켓)

  1. 오우…담배를 사랑하는 나라라니…가겠다는 말 취소하겠어요ㅋㅋㅋ 좀 의외네요. 실내에서 담배피는 걸 금지하지 않았다니. 담배에 관대한 문화인가…국가단위로 의료비 엄청 깨질텐데 말이죠.

    1. 담배에 엄청 관대하더라고요. 아이와 동반하지 않으면 놀이터에 들어갈 수 없지만, 아이와 함께 산책하면서 담배를 피고 있고, 기차 플랫폼에서도 (분명 금연이란 표시가 있음에도) 담배를 피고 있으니까요. -_-;;; 흡연에 엄청 관대한 나라더라고요. 오죽하면 트램이나 지하철 안에 금연표시가 있을까 싶고요.
      그럼에도 비건 음식때문에 꼭 다시 가고 싶어요!

    2. 흠…몬트리올이랑 한번 비교해보고 싶네요 ㅎㅎ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걸까 지금 굉장히 궁금합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