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서 칠일: 자연사박물관, 미술사박물관

ㄱ. 여행 마지막 일정을 짰다. 구글지도가 알려주는 방식으로 길을 찾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도를 살피며 깨닫기를 구글지도는 트램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빈의 대중교통 지도를 직접 보고 가는 길을 다시 짰다. 걷는 거리가 매우 적은 경로! 처음엔 너무 복잡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대중교통 지도였는데 이젠 직접 경로를 짤 수 있는 정도는 된다. 후후후. 물론 아직 많이 서툴고 낯선 곳을 가면 여전히 엄청 긴장하지만.
ㄴ. 아침 일찍 ㅈㅇ님을 만나서 자연사박물관과 미술사박물관을 모두 볼 것인가, 둘 중 하나만 볼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일단 미술사박물관만 빨리 봐서 1시엔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술관엔 9시 30분 즈음엔 도착했고 미술사박물과는 10시부터 문을 연다고 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자연사박물관을 가볍게 잠깐 보다가 미술사박물관을 보기로 했다. (국제)학생할인은 27세까지라고 해서 결국 성인 티켓을 구매한 다음 구경을 하는데… 방 하나 구경하는데 몇 십 분이 걸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방은 대략 40여 개. 저녁에 ㅈㅇ님은 ㅈㅇ님대로 나는 나대로 따로 계획이 있어서 어떻게 할지를 계속 고민하면서 구경을 했다. 그리고 자연사 박물관을 나선 것은 1시 즈음이었다.
ㄷ. 두어 시간 가량 봤지만 사실 대충 봤다. 정말로 대충 봤다. 방 몇 개를 채우고 있는 돌부터 시작해서 각종 화석, 공룡 뼈와 화석, 인간의 진화, 각종 식물과 곤충, 포유류, 파충류, 어패류 등이 1~2층을 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말 인터넷 무제한인 폰이나 인터넷에 연결한 노트북으로 각 전시물을 하나하나 검색하며 각각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며 사용하고 싶었다. 두어 시간으로는 거의 대부분을 놓치고 대충 대충 보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관리자의 센스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 예를 들어 거북류를 전시하는 방의 천장 부근엔 거북이가 해파리를 향해 헤엄치는 모습을 형상했는데 해파리 앞에는 하얀색 비닐봉지가 있었다. 바다에 버린 비닐봉지를 거북이가 해파리로 착각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혹은 홍합 화석 뒤엔 홍합탕 사진을 붙여뒀다. 코뿔소 종류를 전시하는 방에선 코뿔소의 코만 잘라 간 사진과 함께 그것으로 만든 건강보조식품, 코뿔소를 죽였을 총탄을 같이 전시했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그 식품엔 한글도 적혀 있다. 이런 센스는 대단하지만 자연사박물관에 들어온 생명은 모두 결국 박물관을 위해 희생된 생명이란 것을 간과하는 느낌이라 아이러니했다. 죽인 생명, 수집한 생명을 전시하면서 생명과 자연을 보호하자는 언설은 뭔가 깊은 괴리를 야기했다.
ㄹ. 점심 먹기를 포기하고 잠깐 쉬었다가 미술사박물관에 입장했다. 0.5층 첫번째 전시관엔 이집트의 미라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떠오른 두 가지 감정. 우와 정말 멋지다, 오길 잘 했다가 하나고 제국의 역사, 침략의 역사가 이렇게 전시되어 있구나가 다른 하나다. 사진으로, 역사책에서만 보던 이집트 유물을 직접 봤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이집트 뿐만 아니라 그리스, 프랑스 등의 여러 지역의 보물, 문화재 등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감동스러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각 문화제는 정교하고 또 멋지며 세밀한 예술의 경지, 그리고 역사가 농축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침략과 약탈을 전시한다는 것, 장물을 공공에서 전시하 자국의 문화를 자랑하는 행위는 제국과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성찰하기보다는 그리워하고 향수의 대상으로 사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하게 의심하도록 했다. 이런 의심에도, 각 문화제는 정말 멋졌고 지식, 사진으로만 보던 것을 실물로 본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ㅁ. 1층을 보는데만 두어 시간 가량 걸렸다. 2층도 40여 개의 방이 있기에 정말 열심히 봐야 했고 결국 대충 조깅하는 기분으로 그림을 보기로 했다. 2층은 어쩐지 예수 그리스도를 페티시로 삼는 인상이 강했지만, 미술사에서 유명한 그림, 그리고 사진으로 보던 그림을 실물로 볼 수 있다는 감동은 역시나 컸다. 맞다. 박물관 구경은 사진으로만, 이미지로만 보던 작품을 실물로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감동을 준다. 압도적인 크기의 그림을 구경하면서, 결국 기억나는 그림은 사진으로 찍은 그림 뿐이지만, 브뤼델처럼 확실하게 유명한 사람 그림이 주로 기억에 남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좋은 것은 좋은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다리에 감각이 없어서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ㅠㅠㅠ
ㅂ. 만약 내가 이미 오스트리아에 방문한 적이 있다면, 제국의 향수와 최근의 것으로 향한 감각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면 이번 학술대회에 발표한 글은 좀 더 신랄하고 날카로웠을 것이란 고민을 했다. 제국의 역사는 피의 역사고 침략의 역사란 점,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표출하는 시간이란 점에서 빈/비엔나엔 제국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이럴 때 이들이 느끼는 언어의 헤게모니 논쟁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것을 좀 더 자세하게 지적해야 했다. 정확하게 이 지점에서 한글, 한국어를 세계 언어에서 주요 언어로 만들고 싶어하고, 한글로 언어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싶어하는 한국의 욕망을 나는 더 날카롭게 비판하고 좀 더 조밀하게 논의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식민 지배 욕망의 지형에서 영어 사용의 문제, 영어를 번역어로 사용하는 이슈를 이야기해야 했다. 이제 다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진행하는 학술대회에 초대받아서 발표를 할 일은 없겠지만(한국의 퀴어 논의를 발표할 발표자를 찾는다면 그땐 ㅅㅇ나 ㅈㅇ님이 초대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나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아쉬움은 남는다.
ㅅ. 아, 정말 피곤하다. 그리고 혹여나 자연사박물관이건 미술사박물관이건 어디를 구경하시려는 분이 계신다면, 반드시 각 박물관마다 최소 하루의 시간을 투자하시기를. 꼼꼼하게 보고 싶다면 최소 각각 이틀을 투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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