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가게에 가서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이미 요청 받은 김밥이 있었지만 그냥 한 번 살펴봤다. 나를 등지고 있던, 김밥을 마는 분이 내게 “언니, 포장할 거예요?”라고 물었다. 얼른 돌아서며 “네”라고 답을 했다. 돌아선 나를 보는 그 분의 표정은 당혹감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막연하게 내가 가늠하기에 ‘언니’인지 ‘삼촌’인지를 다시 확인하려는 표정이었다.
일전(그래봐야 얼마 안 되었다)에 나를 보고 ‘겉으로 보면 완전 남자지’라고 했던 분이 있다. 그런데 그 후 며칠 뒤 멀리서 나를 보고 다가오더니 ‘여자인줄 알았다’고 했다. 그 사이에 내가 특별히 바뀐 것은 없다. mtf 혹은 트랜스젠더란 걸 명확하게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순간엔 남자로 보이고 어떤 순간엔 여자로 보였다는 뜻이다.
정확하게 이것이 나의 젠더다. 내가 재현하고 싶고 실천하고 싶은 젠더다. 물론 아직은 부족하다는 느낌이고 좀 더 헷갈림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헷갈림은 내가 선택하거나 기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려나 어떤 혼란, 헷갈림, ‘다른’ 해석을 야기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젠더, 남자라고 해석했다가 여자라고 해석했다가, 언니라고 부르고선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도록 하는 바로 그 젠더가 나의 젠더다. 흔한 말로는 트랜스젠더라고 혹은 젠더퀴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어떤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범주의 언어가 아니라, 그냥 이런 경험, 일상의 실천에서 포착되는 상황이 나의 젠더다. 나의 젠더는 나의 상황이며, 나의 상황은 나의 젠더다.
언젠가 누군가 저에게 “트랜스젠더로 살려고 하지 말고 남자로 살려고 해봐” 라는 드립을 쳤는데, 묘하게 그게 생각이 나네요.
저는 언젠가 “쟤 왕따지?”라는 말을 전해 들었는데요.
돌이켜 보면 ㅈㅇ님의 경험이건 저의 경험이건 이 모든 것이 ‘나’의 젠더구나 싶어요.
저는 자체 왕따라….
흫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