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도 적었듯이 한국어를 익혀서 동화책 정도만 읽을 수 있는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욕망한다. 떡 하나 안 줘서 잡아먹고, 빨간 모자 보다 일찍 가서 할머니를 산채로 삼키고, 푸른 수염 몰래 방문을 여니 해골이 가득하고. 동화가 이른바 “청소년 권장도서”보다 더 잔혹하기도 하고, 숨기고 싶은 삶의 측면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동화를 읽고 자랐는데, “청소년 권장도서”니 “세계 명작”이니 하는 소설들엔 이른바 “삶의 추악한 면”이라고 불리는 일을 겪고 충격 받았다는 식의 장면이 나오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동화에서 “세계명작”을 읽을 나이가 되는 순간 동화에서 읽은 내용은 모두 잊어버린다는 얘기야? 그러니 동화를 읽을 수 있는 정도란 건 비하의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욕망이 불가능한 꿈이란 것도 안다. 루인이 쓰는 어떤 언어들은 동화책에서부터 배제되어 때로 죽을 때까지 접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언어이기 때문이다. 혹은 희화화해서 나타나는, 조롱거리로 잊혀지는 장면이거나. 하지만 이런 언어를 알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내용이 배배꼬여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언어 혹은 단어만 낯설 뿐이라면 그때부터는 발화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태도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트랜스젠더니 크로스드레서니 하는 언어들을 현학적인 용어 남발로 느끼겠지만 어떤 사람에겐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절실한 언어이다. 트랜스라는 언어를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니 “형이상학”이니 하는 언어와 비슷하게 간주하며 왜 그렇게 어려운 말을 남발하느냐고 말하는 건, 트랜스들의 삶은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개념놀이란 의미이다. (일전에 섹스/젠더/섹슈얼리티의 관계와 관련한 한 강좌에서 강사는 한참을 설명하고선 말을 마치며, 결국은 머리 속에서 가지고 노는 개념놀이죠, 라고 말해서 당황했었다. 강사에겐 이 언어들의 관계가 개념놀이에 불과하겠지만 루인에겐 루인의 삶을 설명하기 위한 절실함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좀더 쉬운 말로 쉽게 설명하라는 요구는, 귀에 거슬리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성찰하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아부하는 언어로 말하라는 태도로 다가온다.
[#M_ +.. | -.. | 트랜스베스타잇과 크로스드레서는 둘 다 이성복장착용자로 번역할 수 있다. 트랜스베스타잇은 이성의 복장을 통해 강한 성적 흥분과 성적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하는 사람이라면 크로스드레서는 이성의 복장을 입는 것 자체를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구분보다는 트랜스베스타잇이 용어의 태생부터 의료담론에서 병리화하기 위해 만든 언어라면 크로스드레서는 이런 “정신병”/“신경증” 취급하는 의료담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언어라는 점이 더 정확한 구분일 것이다.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