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를 향한 사회적 차별, 억압, 괴롭힘, 폭력 등에 따른 공동체의 심리를 다룬 미국의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논문은 “게이와 레즈비언 해방 운동(바이섹슈얼/양성애와 트랜스젠더는 나중에 함께 한다)”로 시작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 논문이 나를 괴롭히는구나’라며 불평했다. 익명의 심사자가 논문을 심사하는 학술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심사자 중에 이런 식의 역사 인식에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편집위원회에 이를 걸러낼 사람이 없었던 걸까? 암튼 순간적으로 이 논문을 그냥 읽지 말까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한국의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 실천자의 역사를 살피면 이런 식으로 역사를 서술하기가 어렵다. 물론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지만 남성간 관계, 여성간 관계, 트랜스젠더 등은 1960~1970년대에 각자 혹은 섞인 형태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게이와 바이남성과 mtf/트랜스여성과 ftm/트랜스남성과 크로스드레서가, 레즈비언과 바이여성과 ftm/트랜스남성과 mtf/트랜스여성과 크로스드레서가 뒤섞인 형태로, 혹은 더 복잡하게 뒤섞인 형태로 종로, 명동, 이태원 등지에서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인권운동을 기준으로 할 때도 같이 시작했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동성애인권운동을 1990년대 초반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LGBT/퀴어 인권운동을 1990년대 초반에 시작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동성애인권운동으로 역사를 전유하고 있지만… 하지만 여전히 고민하고 갈등한다.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와 함께 이를 어떻게 사람들과 공유할 것이란 점 말이다.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선입견처럼 각인된 어떤 지식은 아무리 다른 지식, 해석을 떠들어도 입력되지 않는다. 듣는 그 순간엔 반응이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돌아서서 글을 쓸 땐 ‘무심결에’ 처음의 선입견 같은 지식을 반복한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한국 변태의 역사쓰기를 한다면 그 작업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떻게 이를 공유할 것인가가 중요하겠지. 아마도 역사를 쓰는 작업보다 이를 공유하는 작업이 더 어렵겠구나,라는 고민을 했다. 저 논문을 읽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