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트랜스젠더 이론가는 책을 쓰는 과정에서 편집자에게 다음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모두 학부 수업에서 듣긴 했는데 삶과는 별로 상관이 없더라. 그냥 그건 이론일 뿐이지 삶은 아니라고. 트랜스젠더 이론가는 삶과 무관한 이론에 불과하다는 바로 그 이론이 어떻게 자신의 삶, 그리고 트랜스젠더퀴어의 삶을 설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언어인지를 설명한다. 책 전체를 통해서.
나 역시 그 트랜스젠더 이론가의 말에 동의한다. 남들이 이론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그것이 내겐 내 삶을 설명하는 언어고, 경험이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마치 이론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삶, 이론과는 무관하거나 별개라고 인식하는 바로 그 삶, 그리고 삶을 그렇게 볼 수 있는 것 역시 이론을 여과한 해석이다. 이론과 삶이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을 별개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이론이고 그 이론을 체화한 언설이다.
이론을 벗어난 삶이란 없다고 믿는다. 어떤 것을 이론으로, 어떤 것을 삶으로, 그리고 어떤 언어와 이론으로 삶을 해석할 것인가란 쟁점이 있을 뿐. 모든 삶이 이론화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언어화, 이론화의 외부로 구성된 삶이나 경험, 언어화, 이론화의 내외부를 구축하기 위해 ‘은폐’된 삶과 경험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 역시 이론화의 자장에서 구축된 삶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론이고 저것은 삶이다’는 질문이나 ‘의견’이 아니라 기존 지배 지식을 반복하고 재생산하는 공모 행위다.
이 글을 퍼가도 되려나요?
출처만 밝히신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