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강준만 선생이 실명 비판을 하며 논쟁의 장을 만들고자 했지만, 여전히 학술 논의에서 혹은 다른 어떤 논의에서 실명 비판은 꺼려지는 것이며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논문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라면 그나마 좀 존재하지만 학술대회와 같이 공적 자리에서 행한 언설은 대체로 사적 모임에서 유통될 뿐 공적 논의에서 실명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지금 쓰고 있는 원고에서 정확하게 이 일을 했는데, 즉 학술대회에서 발언했던 내용을 실명으로 인용하며 비평하는 작업을 하는데 어쩐지 많이 부담스럽다. 물론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은 극히 제한되어 있기에 걱정해봐야 큰 문제가 없다는 것 알지만… 냐하하 ㅠㅠㅠ
ㄴ.
그런데 사실 나는 어떤 이론의 한계를 비판하거나,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글쓰기가 불편해 한다.
이렇게 말하면 당황하는 분이 많으려나? ;;; 그런데 사실이다. 물론 트랜스젠더 혐오를 비롯한 특정 이슈에 집중할 때면 문헌이나 발언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글 작업을 한다. 하지만 다른 어떤 상황에선 기존 논의 중 뭐가 있고 뭐가 있는데 그 중 ㄱ은 이것이 아쉽고 ㄴ은 저것이 아쉽고 하는 식의 글쓰기는 정말 안 좋아한다.
ㄷ.
출판 예정인 글에서 언급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지만, 글의 흐름 상 결국 언급하지 않겠지. 그래서 여기에 짧게, 정말 짧게 남기면…
여성혐오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글을 읽었는데, 한윤형은 2013년에 출판한 어느 한 글에서 사실상 혐오발화자, 혐오가해자를 두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최철웅은 2015년에 출판한 어느 짧은 글에서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을 가지치기하며 남성연대를 공고히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글에 당황하면 초짜인 것 같지만 당혹스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짧게 맥락 없이 논평하면 각 필자에게 예의가 아니다. 두 저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예의가 아니고. 지금 쓰고 있는 원고가 끝나면 나중에 좀 더 자세히 논해야겠지. 그것이 내가 비판하는 이들에 대한 예의이고, 나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기본 자세니까.
ㄹ.
어떤 문헌을 직접 비판하거나, 어떤 사람을 직접 언급하며 비판하는 글을 쓰고 있을 때면 늘 몸이 불편하다. 하지만 또 이것이 필요한 순간이 있어 안 할 수도 없다.
미국 힙합씬에선 디스 문화가 상당히 발달해 있는데 한국에선 이런 문화가 별로 없다는 질문에 데프콘은 미국은 땅덩어리가 크지만 한국은 좁아서 그렇다고 답했다. 즉, 미국 서부의 래퍼가 동부의 래퍼를 디스하고 이를 통해 디스전이 발생한다고 해도 이 둘이 직접 조우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평생 안 만날 수도 없다. 하지만 한국은 그냥 만나게 되어 있다. 집회에 나가거나 축제에 참여하거나, 집 구석에 콕 박혀 지내는 것이 아니라면 무조건 수시로 만나게 되어 있다. 국토도 좁지만 씬 자체가 좁아서.
나는 데프콘의 저 분석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그냥 납득이 되었다. 현실이니까. ㄱ이 어떤 문제 있는 논의를 했다고 비판해도, 운동을 하다보면 ㄱ과 같이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꼭 발생한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강준만 선생의 지적은 정확하다. 모두가 서울에 모여 있어서 학문이 발전하지 않고 토론도 불가능하다. “지식 생산은 고립과 관련이”(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68905.html) 있는데 서울에 집중해 있는 현재 상황에선… “제가 서울에 있거나 학문 공동체에 있었으면 할 말 다 못했고 제가 비판했던 사람들과 똑같이 되었을 겁니다.”
ㅁ.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는 태도는 그나마 다행일까? 언젠가 인간관계를 포기해야 작품활동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말은 매우 정확한 것 같다. ‘정확하다’고 단언하고 싶지만 단언하기엔 나는 아직 너무 어리다. 그러니까 어리석다.
갱쟝하고 현명한 쟈기!!! 글 기대할게요 -3-
고마워요!!! 헤헤헤… 하지만 언제가 될지… ㅠㅠㅠ 🙂
강 교수님이 하신, “고립과 중독은 축복이다”라는 말씀… 루인 님과 최근에 고정 스케줄을 잡은 1인이지만서도 너무나도 공감이 되는 부분입니다.
시간 내주시는 것이 늘 감사해요. 저도 혼자 있을 때에, 뭔가 뚫어져라 텍스트와 eyesex 하고 있을 때에나 비로소 기쁜 처지라서 그런지 요즘 인간관계의 (불)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공부한 게 코털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제가 이 대목에 대해서 나불거리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사람들과 만나다보면 말 통하지 않기에 불편한 것보다는 제가, 제 몸이 자꾸 죽어가는 게 느껴져요.
제가 루인님 학업활동에 방해되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이야기를 나누며 무척 많은 자극을 받고 또 흥미로운 내용을 많이 듣는 걸요.
그저 서두리지 말라는 말은 꼭 해드리고 싶었어요. 어차피 우리는 한 번에 단 한 권의 책 혹은 단 한 편의 논문 밖에 못 읽는다는 것. 서두르거나 조급해봐야 아무 소용없고, 그저 묵묵하게 한 권, 한 편 차근차근 읽는 수밖에 없지요. 그냥 느낌 오는대로, 혹은 잡히는대로요. 🙂
그리고 스스로를 너무 낮추지 마세요.
제 주변엔 왜 이렇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많은 건지… 끄응…
나는 왜 이 정도일까라는 생각 같은 거 하지 마시고, 그냥 묵묵하게 한 권, 한 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