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성소수자 행사서 대통령 연설 방해한 트랜스젠더 쫓겨나”
출처 : SBS 뉴스
영어 판본의 기사를 대충 확인해도 아주 틀린 번역은 아닌 듯하여…
매우 역설적인 기사였다. 황당하고 화가 났다.
미국 LGBT의 달을 맞아 백악관에 LGBT를 초청해서 오바마 미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열렸다. 오바마가 연설하는 중에 한 트랜스젠더 활동가가 오바마의 연설을 방해하며 LGBT의 국외 추방 이슈를 제기했다. 오바마는 이곳에 내 집이라며(“당신은 내 집에 있다”) 연설 방해를 비난했고, 결국 그 활동가(Jennicet Gutiérrez http://goo.gl/SNYR92)는 쫓겨났다고 했다. 위에 링크를 남긴 한국어판 기사에 따르면 그날 오바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인용] 이날 행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 결혼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단과 상관 없이 그의 6년 반의 임기 동안 “미국 전역에서는 부인할 수 없는 변화가 있었다”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은 좀 더 개선되야 한다고 말했다. [/인용 끝]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트랜스젠더의 언어를 듣지 않으려 했고 그 트랜스젠더를 쫓아냈다. 물론 누군가의 연설에 방해하는 행위 자체는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적절하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행위를 통해 전달하고 하는 언어가 있다면 그것은 그런 행위를 통하지 않고선 결코 전달할 수 없는 내용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Gutiérrez가 했던 말은 정말 중요한 이슈였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미등록 LGBT/퀴어,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LGBT/퀴어가 추방당하고 있거나 추방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브리가 날카롭게 분석했듯, 어떤 LGBT/퀴어는 추방 판결을 유예 당하며 생존 자체를 위협 받고 있다. 그런데 그런 언설을 오바마는 듣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기사를 읽다가 내가 더 분노한 지점은 다음 구절이다.
[인용] 다른 참석자들도 이 참석자에게 야유를 보내거나 그의 말이 들리지 않도록 ‘오바마’의 이름을 연호했다. [/인용 끝]
이것이 말하는 바는 정확하다. 현재 정치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와 할 수 있는 이야기, LGBT/퀴어의 삶을 둘러싼 이슈에서 말해도 괜찮은 이슈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동성 결혼 같은 이슈는 말해도 괜찮고 매우 중요한 이슈다. 트랜스젠더 이슈는? 잘 모르겠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국정연설인가 연두연설인가 어딘가에서 트랜스젠더를 언급했다고 올 초에 난리였지만 트랜스젠더 이슈, LGBT/퀴어 이슈를 제기한 트랜스젠더는 백악관에서 쫓겨났다. 제도화된다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나? 의제는 선별된다. 가치 있는 의제와 의사 방해로 추방당할 수 있는 의제가 규정된다. 그리고 동성결혼 같이 “매우 이기적” 의제(케이트 본스타인의 표현이기도 하다)가 아니라 LGBT/퀴어의 생존이나 삶 자체를 위협하는 의제는 말할 수 없는 것, 혹은 정부 정책에서 말해선 안 되는 것으로 배제된다.
어제 밤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고 난리다. 한국의 여러 LGBT/퀴어도 이를 긍정하고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반응을 보인다. 진심을 말하자면 웃기는 일이다. 나의 첫 반응은 ‘그래서 어쩌라고?’ 심지어 미국이 전세계 최초도 아닌데 왜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에 이렇게 난리를 치는가? 정말로 묻고 싶다. 미국이, 특히 미국의 스톤월 항쟁이 한국 LGBT/퀴어 운동의 기원이라도 된단 말인가? 일전엔 6월 28일은 스톤월 항쟁이 발생한 날이라며, 스톤월 항쟁과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행사날을 연결하는 글을 보고 뒷목을 잡았다. 뭐지? 정말로 한국 LGBT/퀴어 운동의 신화적 기원, 망상적 기원은 스톤월 항쟁이라고 여긴다는 뜻이다. 한국이라는 지역이 아니라 아니라 미국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을 사유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바마는 미국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을 두고 큰 진전이라고 말하며 재판 당사자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웃기는 쇼다. LGBT/퀴어를 추방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언설은 무시하고 그 말을 한 사람은 쫓아냈으면서(추방했으면서) 동성결혼 합법화는 축하하는 태도. 끔찍한 모습이다. 의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LGBT/퀴어의 삶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알려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동성애자의 동성결혼은 축복할 사건이다. 그렇지 않은 의제는? 잘 모르겠다.
정말로 신화적 기원이고 신화적 고향인 듯 합니다…왜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지는
그러니까요. 이 주제로 한번 제대로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할 듯해요. 직접 해주시면 더 좋고요! 🙂
밤새 잠을 못이뤄서 루인 님 블로그에 왔더니 역시 언급하실 거라고 생각했던 지점이 등장했네요. 사실 Gutiérrez가 추방당한 일 뿐만 아니라 오바마가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를 함께 쭉 밀고있다는 것도 눈 여겨 봐야 할 일이지요. 여튼 페북이 무지개 빛으로 뒤덮였는데 소수 인종과 트랜스/젠더 비순응인 친구들 반응은 많이 엇갈렸어요. 저를 포함한 대다수는 축하의 분위기를 인정하면서도 ‘아, 드디어 저 일이 끝났구나… 이제 우리 얘기도 좀…’의 응답이 컸어요. 폴리아모리로 정체화하는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Marriage Equality for All!”에서 본인들은 해당 안하는, 혹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자조적으로 나오기도 했고요. 언급하신대로 동성애자의 동성결혼은 축복할 사건이지만, postcolonial sensibility의 측면에서 한국 퀴어판의 반응을 재조명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부터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한층 더 강화된 호모내셔널리즘을 행사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죠.
제가 글을 잘못 쓴 것 같은데 “축복할 사건”이란 건 저의 입장이 아니라 오바마 같은 인간은 축하하겠지, 축복하겠지라는 비꼼에 더 가깝다는 걸 먼저 쓰면서…
전 좀 끔찍한 상황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동성결혼 합법화가 양성애를 비롯한 비동성애-비이성애 실천을 더욱 힘들고 불가능한 삶으로 만들겠다는 염려를 하고요. 아시다시피 실제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이기도 하고요.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건 말건 트랜스젠더 혐오살해 사건은 날마다 발생할 것이고요. 그래서 지금 저는 염려가 더 커요. 실제 어찌될는지는 지켜봐야 하지만요…
제가 뒷목 잡은 지점은 한국에 지내는 퀴어 외국인들 (백인 미국인을 중심으로 기타 다양한 백인들)이… 그것도 나름 한국에서 퀴어 관련 활동하는 사람들이 Korea, are you ready for your Stonewall? 이라며 딴에는 사기를 북돋아준다는 발언을 했을 때…
이거 사진으로 보내드릴게요!
그런 말은 한쿡에서 태어나서 스스로를 한쿡인으로 인식하는 LGBT/퀴어 활동가도 빈번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진심 뒷목 잡는 순간이지요. 그노무 스톤월이 왜 이렇게 신화가 되었는지, 운동의 결정적 기점이 되었는지를 탐문할 필요가 있어요. 지난 번 아시아컨퍼런스에서도 동일한 상황이었거든요… 크릉
안녕하세요 루인님. 삐라를 통해서 이곳까지 오게되었습니다. 삐라에 기고하신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와서 읽었던 루인님의 글들 중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는 이슈가 많아서 개인적인 생각을 첨삭하면서 글을 읽고 싶어 블로그로 퍼가려고 하는데(출처는 당연히 밝히겠습니다.) 괜찮을까요?
앗.. 고맙습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기쁘고요.
출처를 밝히신다면 퍼가시는 것도 괜찮긴 한데요..
어디로 퍼가는지도 알려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암튼..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