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 번 쓴 것 같은 에피소드 같지만…
몇 년 전 매실액을 물에 희석하고 있었다. 직전에 만든 희석액이 맛났기에 ㄱ은 같은 맛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매번 다른 맛이 나온다고 답했다. ㄱ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그렇게 오래 마셨으면 최상의 비율을 알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10년을 마셔왔지만 그런 건 모른다고, 매번 다른 맛이라고 답했다. 10년이면 전문가가 될 시간이지만 몇 년이 더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매실액을 희석할 때마다 맛이 다르다. 그리고 정확하게 이것이 내가 음식을 만들 때마다 맛이 다른 이유이자 요리를 못 하는 이유다.
지금도 나는 최적의 맛을 위한 비율을 상상하지 않는다. 그냥 그때 그때 내키는대로 처리한다. 어떤 날은 무척 맛나지만 그 맛은 결코 재현될 수 없다. 나도 모르니까. 다음에 다시 만들면 맛이 없다. 유일하게 비슷한 맛을 유지할 수 있는 음식은 라면 정도랄까? ;ㅅ;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요리에 관심이 없어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맛난 음식을 특별히 선호하는 타입이 아니다. 맛난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고 즐겁지만 맛난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최소한의 맛은 맞춰야겠다고 애쓰는 타입이 아니다. 1년 넘게 김밥만 먹으면서 살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고 비빔밥을 만날 줘도 그냥 먹을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내게 식사는 내게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의미에 가깝지 맛을 음미한다는 개념은 아니다. 그냥 대충 입에 맞으면 무엇이든 꾸준히 먹을 수 있다.
내 입맛이 이러하니 요리를 해도 맛이 애매하다. 맛있게 만들기보다 대충 먹을 수 있는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느낀다. 물론 이런 행동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먹고 살 때 이런 태도가 문제가 될리 없다. 하지만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식사 당번으로 다른 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해야 할 때다. ㅠㅠㅠ
사무실에선 일주일씩 돌아가며 점심 식사를 준비한다. 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기간이면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내가 맛있게 만드는데 별 관심이 없다보니 무언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느낌이랄까. 물론 E에게 배운 덕분에 요즘은 좀 노력을 하곤 있지만 그래봐야… ;ㅅ;
이번 주가 식사 당번이어서 오늘 끝내고 나니 어쩐지 이런 고민이 들었다. 맛을 내는데 관심이 없으니 (사실 별 스트레스는 안 받지만) 은근 부담이다. 그리고 깨닫기를 내가 직접 요리를 하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간단하게 익히는 수준으로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보조만 할 것, 내가 직접 간을 맞추거나 최종 결정을 하지는 말 것. 판매용이 아니라고 해도 만들어진 것을 익히는 수준으로 할 것. 하지만 어떻게? 가장 큰 난제구나. ㅠㅠㅠ 그냥 사람들은 운에 따를 수밖에… 흐흐흐
참고로 매일 같은 반찬을 줘도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1인. 호호호.
오호. 저랑 정반대시네요ㅎㅎ 음식 한꺼번에 많이 해놓고 냉동시켰다가 뎁혀먹으면 편리할건데 저는 빨리 질려서 그렇게 못해요. 루인님은 건강식 하기 좋은 입맛인거 같아요!
저의 꿈은 정말 간편하고 비염 완화에 도움이 되는 식단을 만들어선 그 식단을 꾸준히 유지하는 거예요. 흐흐흐. 반찬 한두 가지는 변하겠지만 기본 음식은 변하지 않는… 근데 이게 건강식으로 구성되면 진짜 좋은데 인스턴트나 정크비건식으로 구성되면… 호호호
(건강식인지엔 의문이 들지만 지금도 음식을 정말 단순하게 해서 먹고 있긴 하네요..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