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인지 후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충 그 시기라고 기억한다. 그 어느 즈음 어머니와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창밖을 보며 이것저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글자가 보이면 속으로 그것을 따라 읽고 했다. 속으로 따라 읽었다고 기억하는 이유는 소리를 냈다면 그 다음 기억이 없었을 테니까. 어느 한 글자에서 자꾸만 망설였다. 저 글자를 이렇게 발음해도 괜찮을걸까. 저 글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내게 익숙한, 무려 그 꼬마일 때 내게 익숙한 단어가 아니었고 그래서 매우 쉬운 단어였음에도 읽을 수가 없었다. 정말 쉬운 자모 조합이었는데도 내게 낯설었기에 읽기를 망설였다. 며칠 지나 그 단어를 그림으로 기억한 나는 종이에 단어를 그렸고 어머니께 어떻게 발음하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간판”이란 단어였다. 정말 간단한 자모음 조합임에도 나는 읽기를 망설였다. 그냥 자신감 있게 읽어도 되는데 그러지 못 했다.
학부에서 어느 수업(수학 수업은 아니었다) 중간고사 때였다. 문젤 풀고 있었는데 결과에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모든 구간에서 일정한 일차함수가 그래프가 그려지길 예상했는데 풀이 결과는 특정 구간에서 함수 값이 바뀌는, 꺾인 그래프였다. 수업 시간엔 늘 구간에 상관없는 직선 그래프만 배웠기에 당황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결국 나는 그 문제의 답을 적지 못 했다. 결과는 내가 푼 결과가 맞았다. 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음으로 내가 직접 도출한 결과를 불신하고 기각했다.
나는 늘 이런 삶을 사는데 내가 내린 어떤 논의나 논리적 인과를 두려워하고 불신할 때가 있다. 그럴리가 없어… 혹은 내가 가진 선입견으로 어떤 사실을 인정하길 두려워하는 몸 상태. 자주 그런다. 이렇게 논리를 조직해도 괜찮은가…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내가 가진 선입견으로 진부하고 엉뚱한 논의를 도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 순간 이런 불안이 내 글을, 그리하여 나를 엄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