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_ 예전에는 목발을 짚으면, 교통사고가 나서 목발 짚어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말을 시켜요. ‘내가 다쳐봐서 아는데 너무 힘들더라’ 그런데 저는 아프진 않거든요. 나와 다른 경험인데 자꾸 그렇게 말하면 (내 경험이) 공감이 안 될까 봐, 너무 다른 몸이라서 공감이 안 될까 봐 걱정이지요. (235)
최해선_ 어릴 때부터 병 때문에 아팠지만, 이 병 외에도 아픈 데가 있잖아요? 생리통이 있다든지, 두통이 심하다든지, 감기 기운이 있다든지… 그런 이야기는 못하는 것 같아요. 큰 병 때문에 식구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폐를 끼치고 있으니까. 그 외에 자잘하게 아픈 건 내가 알아서 약을 먹거나 그냥 며칠 아프고 말거나, 어쨌든 이야기는 못했던 것 같아요. (236)
강다연_ (중략) 제가 이야기를 끄집어내야만 ‘이런 행동이 장애여성들에겐 폭력이구나’라는 걸 알릴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는 게 제 자신에게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못 했어요.
이호선_ 못 쓴 이야기가 진짜 중요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238)
이호선_ 중요한 부분이네. 중도장애인 이야기는 다들 얼마나 내가 잘 나갔나, 얼마나 내가 나락으로 떨어졌나, 그런데 어떻게 다시 성공했나, 그런 순서로 쓰는데. 우리가 암암리에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쓰지 않으려고 자꾸 노력을 했던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쓴다 해도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쓰고 있을 때도 있어. 그렇지 않도록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후략) (239)
김효진, 최해선, 강다연, 박현희, 이호선 지음. [모든 몸은 평등하다: 장애여성들의 몸으로 말하기] (삶창, 2012)
근육통으로 누워 있는 동안, 미뤄둔 이 책을 읽었다. 다른 글을 준비하여 읽어야 하는 논문이 있음에도 그랬다. 장애여성의 몸 경험이 비장애여성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비장애-트랜스젠더퀴어의 몸 경험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 조금은 배울 수 있었다. 읽는 내내 내가 상상하고 사유하는 몸은 어떤 몸인지를 되새겼다. 당연히 부끄러웠다. 물론 이 책을 통해 배운 건 극히 일부다. 그것도 문자로 기록된, 그러니까 많은 검열을 거쳐 나온 언어를 다시 내 상상력의 한계 내에서 배웠다. 그러니 배웠다는 말이 부끄럽기도 하다.
이곳에 인용하려면 대담보다는 다섯 명의 작가가 쓴 각자의 글에서 인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글은 어떤 문맥과 흐름이 있어서 일부러 뽑지 않았다. 대신 대담에서 몇 구절 뽑았다. 아마 비규범적 존재로 인식되는 사람이라면 많이 공감할 듯하다. 하지만 그런 공감이 장애여성의 경험을 나의 경험으로 등치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목발 에피소드가 정확하게 지적하듯. 타인의 경험을 내 경험과 유비하거나 내 경험에 수렴하며 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배웠다.
루인 님, TSQ에 글 나왔네요! 축하해요! 내가 다 덩실덩실. http://tsq.dukejournals.org/content/3/1-2/202.abstract (포스팅하고 상관없는 댓글이라 죄송해요)
우와! 알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즈음 나오겠거니 하고 있었거든요. 헤헤.
기뻐해주셔서 더 고맙고요. 부끄부끄…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