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혹은 비-바이섹슈얼/양성애자가 바이섹슈얼 여성에게 종종 하는 말이다. “결국 남자랑 결혼할 거잖아.”, “남자랑 결혼하면 되잖아.” 혹은 “남자 만나서 편하게 살면 되잖아.” 실제 남성과 결혼하는 바이여성이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바이여성을 혐오하는 의도, 그 범주 자체를 폄하/폄훼하려는 의도로 사용하는 발언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사실이라며 바이섹슈얼 범주와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그렇게 부정해도 정당하다고 큰소리친다.
(나는 ‘혐오’라는 표현을 내켜하지 않지만, 이 글에선 사용하겠다.)
그런데 “결국 남자랑 결혼할 거잖아”라는 언설은 바이혐오일 뿐만 아니라 ‘여성’ 혐오다. 남성과 만날 여지가 있는 사람은 곧 남성과 결혼할 사람이며, 남성과 만나거나 만날 여지가 있는 사람은 남성과 결혼해야 하는 사람으로 등치하는 한국 사회의 지독한 여성혐오와 공명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아니, 여성이건 남성이건 성인이면 결혼을 해야 하고, 성인 여성과 남성이 연애를 하면 그것은 결혼을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한국 사회의 인식론이 저 발언에 내포해 있다. 만약 성적 취향이나 지향이 무엇이건, 유성애건 무성애건, 성인 여성이 남성을 만난다는 이유로 결혼을 상기하지 않는다면, 결혼을 해야만 ‘정상적’ 사회 성원권을 얻을 수 있다는 지배 규범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런 언설이 자동연상처럼, 연관 검색어처럼 등장할 수는 없다.
또한 “남자와 결혼하면 되잖아”와 같은 언설은 한국 사회에서 법적으로 허용되는 형태의 결혼이 ‘여성’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도 사유하지 않거나 너무 안일하게 사유한다. 결혼을 통해 많은 여성이 경력 단절을 겪고, 고통을 겪으며 괴물로 취급된다. 하지만 저 발언은 결혼 제도의 부당함, 폭력성을 도피나 안식 정도로 이해한다. 이것은 여성혐오일 뿐만 아니라 현실 파악이 안 된 소리다. 무엇보다 현재 한국에서 결혼은 계급이슈로 변하고 있다. 경제적 여건과 결혼이 긴밀하게 연결된다. 취집이란 말이 있는데 취집도 경제적 여건이 되는 여성에게나 좀 더 가능한 일이다. 즉 “남자와 결혼하면 되잖아”는 한국의 경제적 상황, 계급이슈를 무시하는 발언이다.
“결국 남자랑 결혼할 거잖아”와 같은 종류의 발언은 정말 바이여성혐오인데, 바이섹슈얼 범주만 부정하고 삭제하려는 의도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발언은 현상이나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의 기술이 아니라 여성을 남성과 연결해서 사유하는 태도며 여성이란 남성과 관계를 맺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에 따른 언설이다. 어떤 범주의 남성이건, 남성과 연애를 하기 때문에 결국 남성과 결혼할 것이란 사유의 흐름은 결국 여성을 남성에 귀속된 존재로 이해하는 태도의 반복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2007년 이후 차별금지법 운동에서 강력하게 제기했던 의제인 복합차별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여성이란 젠더 범주, 바이섹슈얼이란 ‘섹슈얼리티’ 범주를 모두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방식의 태도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남자랑 결혼할 거잖아”와 같은 표현은 바이여성이 실제로 남성과 결혼을 하는 경험을 비난하는 언설이 될 수 없다. 그 표현은 그 자체로 비판받아야 하는 언설이며,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이 바이혐오 뿐만 아니라 여성혐오를 내면화했거나 여성혐오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는 언설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남성과 만나거나 만났거나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결혼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반응을 한다면, 바로 그 반응은 정작 그 자신이 동성애결혼을 욕망하기 때문은 아닌가 의심할 수 있다. 이것은 추측이다. 하지만 의심스럽다. 연애를 결혼의 전단계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연애를 결혼 욕망의 일부로 환원하며 사유하지 않는다면 이런 식으로 발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이섹슈얼 여성을 비난하거나 삭제하고 싶다고 해도, 이런 연결고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표현을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 자신의 연애 역시 결혼의 전단계, 결혼을 위한 욕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그러니까 바이여성을 향해 “결국 남자랑 결혼할 거잖아”라고 비난하는 동성애자 혹은 이성애자의 태도는 ‘나는 동성애결혼(혹은 이성애결혼)을 하고 싶다’는 항의 발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발언은, 결혼이란 이성애결혼과 동성애결혼 뿐이며 그 외의 결혼 형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분법적이고 배타적 오만함/인식론을 내포한다. 이런 점에서 이런 발언은 바이섹슈얼 여성을 향한 복합혐오일 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퀴어, 인터섹스 등을 향한 복합혐오기도 하다. 연애건 결혼이건 바이섹슈얼을 지우는 동시에 트랜스젠더퀴어/인터섹스를 지우는 발언이다.
그래서, E가 자주 지적하듯 바이섹슈얼 의제는 트랜스젠더퀴어/인터섹스 의제다.
이거슬 수정하여 ㅂㅇㅁㅇ 원고로
호호호 고마워요. 다른 내용을 보태서 그렇게 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