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누군가의 강의를 듣거나, 내가 한 강의에서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발언을 급진적이라고 평하는 말을 들었다. 강사가 자신의 어떤 주장을 하며 자신의 주장이 급진적이라고 말하거나 내게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질문 내용을 급진적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나는 이런 평을 들을 때마다 당황한다. 당황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가볍게는 그들이 하는 급진적 사유란 것이 내가 10년 전부터 떠들다가 이제는 너무 태만하고 진부하다고 느낀 언설이라 그렇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저 소소한 당혹감 정도일 뿐이다. 정말 당혹스럽고 당황하는 부분은 스스로의 생각, 자신이 하는 발언을 급진적이라고 직접 평가하는 지점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생각이나 언설을 직접 급진적이라고 평할 수 있을까?
자신의 생각이나 언설을 스스로 급진적이라고 평한다면, 나의 걱정 중 하나는 ‘이제 저 사람은 어떡하나’다. 왜냐면 자신의 생각을 이미 급진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더 이상 다른 사유의 가능성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급진적이라고 평한다면 다른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또 한 편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급진적이라고 평한다는 것은 그 생각/주장이 그 사람의 삶과는 무관한 내용일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삶에서 나온 앎과 고민을 두고 급진적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것은 급진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서 싸우고 투쟁하고 경합할 내용이지 자신을 급진적이라고 평할 부분은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급진적이라고 평한다면, 그런 수사를 붙인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인 것일까?
사실 나는 자신을 급진적이다, 진보적이다와 같은 수사로 설명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급진적이다, 진보적이다와 같은 평가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정말로 급진적 사유를 만난 적이 별로 없다. 주디스 버틀러의 주장도 급진적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고 삶을 앎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방법론으로 받아들였고, 다른 사유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 주장은 정말 ‘급진적이다’라고 인식한 주장은 정말 없었다. 그렇기에 더 당황한다. 근래 들었던, 자신의 주장이 급진적이라고 평했던 내용은 모두가 태만하고 진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급진적이라고 말할 때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 태도, 입장, 위치 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식의 자기 평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당혹스럽고 궁금하다.
살아있어볼려고 생각하는거죠… 울지 않고 살아있으려고. 오랜만에 정말 공감가는 글이네요.
공감 간다니 고마워요. 버티는 게 견디는 게 가장 힘든 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