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즈음, 챗GPT가 공개되었다. AI와 관련한 소식, 정보, 뉴스는 언제나 들려왔고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으로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AI와 관련한 소식이 새삼스럽게 충격을 줄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고민했다. 하지만 챗GPT의 충격은 상당했다. 성능은 상당했고, 20년 넘게 특정 주제의 AI를 연구해온 연구자들이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좌절하거나 암울해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널을 중심으로 챗GPT가 공동 저자가 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시작되었다. 몇몇 투고 논문에서 챗GPT를 사용한 뒤 저자명에 챗GPT를 등록했다. 챗GPT는 보조 도구인데 논문의 공저자가 될 수 있는가? 그런데 챗GPT는 유려한 글쓰기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논문 요약 정리 능력 또한 괜찮은 편인데 이런 공헌을 했다면 공동 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챗GPT가 아닌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공저자로 등재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챗GPT라는 AI라면? 만약 챗GPT가 공저자가 될 수 있다면 그 공헌도는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 혹은 세상 모든 논문이 챗GPT를 비롯한 AI를 공저자로 등재시키기 시작한다면 모든 논문은 AI가 쓴 논문이 될 수도 있는데 이를 어찌할 것인가.
돌이켜 고민해볼 때, 챗GPT가 공저자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기존의 학제에서는 논란이 크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관련 전공 분야만 심각한 화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큰 파급을 일으켰다. 일단 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통상적으로 제출하는 글쓰기 과제를 챗GPT로 작성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 뉴욕시는 학교에서 챗GPT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고 이탈리아는 국가 차원에서 챗GPT를 차단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AI의 윤리를 가르치는 대학 교수는 대다수의 수강생이 챗GPT를 사용해서 에세이를 쓰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평가의 방식을 고민한다고 밝혔다. 이제 숙제나 시험은 집에서 작성한 다음 제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강의실에서 펜으로 작성하도록 요구하거나, 구두 시험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고민도 등장했다. AI의 윤리를 다루는 수업에서 구두로 시험을 칠 수 있다는 고민에, 일군의 사람들은 AI를 모르는 AI 수업이라고 평했지만 아마도 대다수의 강사나 교수라면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AI 시대에 글쓰기는 무엇인가. 하지만 이 질문을 감당하기도 전에 구글이 나섰다. 구글은 전세계에서 AI와 관련해서 가장 앞선 기업이라고 평가받았지만, 구글 서비스에 조심스럽게 혹은 잠수함패치처럼 알게 모르게 AI 기술을 적용했지 챗GPT와 같은 서비스를 만들지는 않았다. 몇 년 전에는 구글 어시스턴트가 알아서 전화해서, 나의 일정과 경로를 파악한 다음 알아서 예약을 하는 상황을 시연했다가 상당한 우려를 듣기도 했다. 그러니 AI 서비스의 공개에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무엇보다 챗GPT 같은 서비스에서 광고를 붙이는 방법을 찾지 않는다면 구글은 챗GPT 같은 서비스를 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전망이 무엇이든 챗GPT로 인해 이제 구글은 끝났다는 세평이 넘쳐났고 구글은 한물 간 기업, 뒤쳐진 기업, 곧 망할 기업과 같은 식으로 말하는 이들도 넘쳐났다. 결국 구글도 챗GPT 같은 서비스로 구글 바드를 출시했다. 공개 시연을 한 날 구글 바드는 틀린 답변을 제출했고, 욕만 먹었다. 챗GPT도 할루시네이션 현상이 빈번했고 그래서 세종대왕이 맥북을 집어 던진 매우 유명한 사건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챗GPT에게만 용인될 뿐 구글에게는 용납되지 않았다. 구글 바드의 공개는 이제 진짜 구글은 끝났다는 세평을 입증하는 것만 같았다.
한편, 나는 몇 년 째 대학원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16주 중 한 주를 따로 할당해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원생이라고 해서 글쓰기 문법을 아는 것은 아니며, 논문 쓰기는 생각보다 어렵고 기술적인 곤란함이 많지만 이를 알려주는 곳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주로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하지만 이번 글쓰기 수업에서는 AI 시대의 글쓰기를 다루어야겠다고 고민했다. 저널에서 공저자 논쟁이 발생했다면 더이상 미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AI 시대의 글쓰기를 다루겠다고 했을 때 수강생들은 이미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챗GPT나 구글 바드를 사용해본 이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AI가 나보다 글을 더 잘 쓰고, 더 똑똑하다는 것을. 그러니 AI를 사용해본 사람일 수록 글쓰기와 연구하기에 곤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우선 비전공자가 이해하는 AI의 발달사를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했다(2000년대 이후의 유명한 사건만 다뤘다). 무엇보다 통상 기술과 관련한 세간의 유행을 한때의 유행으로 취급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현실인데, 기술과 관련한 세간의 유행어는 많은 이들에게는 한때의 유행어 같았겠지만 그 모든 유행은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사용하는 기술이다. 그러니 구글 바드나 챗GPT를 무시하지 말고 적극 사용해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물론 AI를 적극 사용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데, 일단 대학 행정팀에서는 AI를 이용한 표절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으니 교육이 필요하다는 공문을 발송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통상의 교육은 기존의 지식을 가르치고, 이를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을 보는 형식을 취한다. 시험은 객관식일 수도 있고 주관식일 수도 있으며, 주제를 주고 자신의 고민을 작성하도록 하는 에세이 형식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이런 지식을 아는 것, 정보를 충분히 알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은 중요하며, 에세이 형식은 글쓰기 능력이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AI 시대에 글쓰기에 대한 통상의 평가, 지식 습득에 대한 통상의 평가는 괜찮은가? 이것은 방송에 나오는 일군의 패널이 적극 질문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AI를 적극 사용해본 교수, 연구자, 연구소장, 기자 등은 모두 글쓰기가 더이상 평가 지표가 될 수 없으며 새로운 질문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니 대학에서 혹은 교육에서 평가 방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과거로 경유해보자. 2000년대 중반 즈음, 나는 학부 강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매우 당황했었다. 나는 게일 루빈의 그 유명한 논문 “성을 사유하기”를 말했는데, 사회학과 여성학을 전공한 학부 강사의 반응은 의외였다. “게일 루빈이 새로운 글을 썼어요?” 그 강사는 루빈의 “여성거래”는 알고 있었지만 “성을 사유하기”는 모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강사가 지나치게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고민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역사를 다시 살필 수 있게 되면서 당시 나의 평가는 매우 잘못되고 멍청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게일 루빈의 책 『일탈』 서문에도 나온다. 루빈은 1960-70년대 자신이 다닌 대학의 도서관이 다행스럽게도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괜찮은 도서와 자료를 소장하고 있었고 도서관 사서는 이와 관련한 괜찮은 목록을 만들어두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의 언어로 번역하면, 게일 루빈의 말은 그 시절 구글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구글이 등장하기 전, 지식은 내가 다니는 대학 도서관에서 내가 열람할 수 있는 도서의 양과 종류로 결정되었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서 루빈의 “성을 사유하기”를 수록한 책이 없었다면 그 논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논문과 같았다. 혹은 존재는 알아도 쉽게 접근할 수 없기에 소문 속에만 존재하는 무언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구글의 등장 이후 정보는 더이상 내가 거주하는 지역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아니, 이런 말 자체가 진부하고 태만한 내용인 시대다. 달리 말해 구글 이전(BG, Before Google?), 새로운 정보와 뉴스를 아는 것만으로 똑똑한 것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구글 이후, 새로운 정보와 뉴스를 단순히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정보와 뉴스를 어떻게 조합하는가, 이 조합을 통해 어떤 사유과 통찰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연구자 혹은 공부 노동자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니 그 강사가 루빈의 논문 “성을 사유하기”를 몰랐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부당한 행동에 가까웠다. 이런저런 것을 다 떠나, 전공과 무관한 논문과 논의를 모르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럼 AI 시대에 지식의 척도는 무엇이 될까? 새로운 정보 습득에서 정보의 조합과 재배치로 이동했다면 AI 시대는 어떻게 바뀔까? 이런 고민을 하는 중에 구글은 2023 구글 I/O를 통해 새로운 기술 발표를 했다. 그리고 그것은 AI의 전면 배치였고(얼추 10년 전에 구글은 이미 AI 퍼스트를 외쳤지만…) 구글의 대부분 서비스에 AI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제 미국 거주자에 한정해서지만 구글 검색에 구글 바드가 바로 적용되었고, 지역과 큰 상관없이(하지만 현재로서는 언어는 영어 뿐인 듯한데) 구글 워크스페이스에 DUET AI가 적용되었고, 지메일에도 AI가 적용되었다(MS의 코파일럿과 비슷한 서비스다). 모든 서비스에 AI가 적용되었고 기본값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아…
나는 수업의 기말 페이퍼를 작성할 때 몇 가지 조건을 주는 편이다. 분량이나 참고문헌 활용 방식 등등. 그리고 이번 학기에는 반드시 챗GPT든 구글 바드든 AI를 전체 작업의 ⅓ 정도로 활용할 것을 추가했다. 30% 정도로 제한한 이유는 그래도 기말 페이퍼의 제1 저자라면 70% 정도는 직접 작업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점이며, AI의 활용을 아직은 제2 저자 정도로만 제약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내가 이런 조건을 걸지 않아도 누군가는 AI를 적극 사용할 것이며(이미 사용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AI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구글 서비스에 전면 적용되었다면 이제 AI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몇 년 안 지나 AI를 이용하는 것은 구글 검색을 이용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이걸 조건으로 사용한다고?”라고 반응하며. (물론 어디까지가 나의 역할이고 어디까지가 AI의 역할인지는 모호하지만…)
이 글의 생성적 결론은 한두 달 뒤 데이터가 갱신되면 그때 다시 쓰여질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AI를 통한 글쓰기와 연구하기는 이제 구글링한다는 오래된 표현처럼 기본값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더 적극적으로 사용해야지. AI 시대에 무엇이 연구자, 공부노동자의 역할이 될 것인지를 적극 고민하는 것, 이것이 어쩌면 공부 노동자의 출발점인지도 모르겠다. [50H50 칼럼]
+딴소리 추가.
구글 AI와 관련해서 약오르는 점. 구글 나우라고 불린 적도 있고 구글 런처로 불린 적도 있고 요즘은 구글 홈이라고 불리는 것 같은데. 구글에 내가 관심이 있거나 있을 법한 뉴스를 추첨해준다. 그런데 주중에는 블라인드 인기글을 추천해주고 주말이면 김박사넷 인기글을 추천해줌… 구글 너어는 진짜… (심지어 둘 다 사용하지 않는 곳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