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중언부언합니다…]
2023년 6월 16일로 이글루스가 문을 닫았다.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나온지는 몇 달 되었는데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가, 문득 떠올라서 지난 5월 나는 한때 즐겨 찾았던 몇 명의 이글루스 블로거를 찾아갔다. 찾아가는 과정도 이제는 낯선 방식이었다. 크롬 즐겨찾기에 백업되어 있었으나 사용하지 않던 즐겨찾기 목록의 분류를 통해 이글루스 블로거를 찾았다. 이미 이 과정 자체가 낡은 습관처럼 느껴지는데, rss리더를 사용하던 시절 좋아하는 블로그나 사이트가 있다면 rss리더에 등록하기도 했지만 웹브라우저의 즐겨찾기에 등록한 다음 드나들었다. 그 시절은 자신의 즐겨찾기 분류 방법이나 형식을 공유하는 문화도 있었던, 뭐 그런 오래되고 오래된 시절의 이야기다. 즐겨찾기를 사용하는 형식은 SNS 시대의 관습과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SNS는 나의 세계에 다른 이들의 글을 불러와 나의 세상을 만드는 형식이고(rss리더가 이와 유사했다), 즐겨찾기는 상대방의 세계로 가는 주소를 저장한 다음 내가 그곳으로 방문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니까 네이버처럼 이웃을 맺는 형식이 덜 중요하던 시절의 ‘라떼는 말이야’ 같은 이야기다.
아무려나 유명했던 이글루스 블로거 몇 명을 찾았더니 다들 이별을 알리고 있었다. 댓글을 한 번도 단 적이 없는 그들이지만(그만큼 유명했던 블로거다) 이별을 알리는 글을 보니 정말 이글루스가 문을 닫는구나 싶었다. 어떤 블로거는 백업 기술을 공유했고, 어떤 블로거는 백업을 포기하며 그냥 자신의 글이 사라질 것을 공지했다. 물론 많은 블로거는 이미 네이버 블로그를 비롯한 다른 서비스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블로그 서비스는 저무는가…
하지만 블로그 자체는 망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최근 몇 년 간 네이버의 블로그는 페이스북을 늙었다고 여기는 10대와 20대의 사용자가 증가하며 인기있는 서비스로 거듭나는 중이다. 누가 블로그를 쓰냐고 했을 때, 10-20대는 블로그로 넘어가고 있었다. 카카오는 티스토리와 카카오 스토리라는 블로그 서비스가 이미 있음에도 브런치를 런칭해서 인기를 끌었다(과거형이다). 포스타입은 소소하게 유명해서 적잖은 논쟁이나 기록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 이름을 타고 있는 얼룩소는 이런저런 논쟁을 읽으키기도 했다(물론 얼룩소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글을 쓰려는 사람만 있고 읽는 사람은 없다고…). 그러니 블로그 서비스 자체가 종말인가하면 그렇지는 않다. 블로그 서비스는 계속해서 새로운 이름, 새로운 컨셉(하지만 이미 익숙한 컨셉: 공론장을 주장하는 얼룩소의 컨셉은 블로고스피어와 얼마나 다른 컨셉인가)을 주장하며 등장하고 있다. 그냥 이글루스 운영 업체의 한계에 더 가깝거나, 이글루스 자체의 어떤 성격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만약 블로그 자체가 망하는 추세라면 네이버 블로그의 사용자 증가는 네이버의 조작이어야 하고, 브런치, 포스타입, 얼룩소와 같은 서비스의 등장은 돈이 남아 도는 창업자의 유희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니 결국 이글루스를 비롯한 인기 없는 블로그 서비스의 종말에 더 가깝기는 하다. (이글루스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가, 소수의 헤비유저 중심이지 않았는가와 같은 논쟁은 별개로 하자.)
하지만 유명했던 블로그 서비스의 종말 소식은 참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다. 물론 설치형 블로그가 아니라 서비스형 블로그는 무료인만큼 시작하기 쉽지만 언제든 운영 주체의 사정에 따라 개별 블로거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이것은 시작부터 이미 예고된 결과다. 그럼에도 개인 블로거 한 명의 사라짐이 아니라, 싸이월드 수준은 아니겠지만 한때 매우 유명했던 서비스의 사라짐, 그로 인해 유명 블로거가 대량 사라짐, 그리고 그 세월의 기록이 모두 사라지는 결과는 간단한 일이 아니기는 하다(예를 들어 페이스북이 서비스를 접는다고 생각해보라). 그나마 이글루스가 연말까지는 자료 백업을 지원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글루스가 사라지는 문제가 나에게 실질적으로 주는 타격 자체는 별로 없다. 오랜 만에 찾은 이글루스 블로거는 거의 몇 년 만에 찾아간 것이고 그러니 없어진다고 해서 나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별로 없다. 지금 이 블로그는 어차피 설치형이고 내가 결제만 계속한다면 유지될 것이며 이곳이 유지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변방의 쪼렙 블로거’로 남을 것이다.
한때는 얼마간의 농담을 담아 ‘변방의 쪼렙 블로거’라고 표현했지만 이제는 진짜 ‘변방의 쪼렙 블로거’가 되었다. 서비스형 블로그는 손쉽게 이웃맺기나 서비스 내의 구독 같은 형식을 통해 서로를 찾기 수월하지만, 설치형 블로그는 정말로 변방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찾지 않는 이상 결코 찾을 수 없는 그런 웹의 먼지에 불과하니 변방의 변방의 변방에 가깝다. 블로거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도 이제는 찾기 어려우니 나를 블로거로 소개하는 것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때때로 블로거라는 표현은 너무도 낡아서 ‘아직도 그러고 사니?’라는 말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유튜버가 의미 있는 명칭이자 자기 소개 용어로 쓰일 수 있지만 트위터 사용자를 이제는 트위터리안으로 부르지 않은 것과 비슷한 감각이기도 하다. 브런치 사용자는 블로거라기보다 브런치 작가로 불리고 있으니 블로그라는 형식은 남았지만 블로거라는 명칭은 이제 희소하고 희소한, 낡고 낡았다.. 그러니 나는 여전히 변방의 쪼렙 블로거이며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서비스가 사라졌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냐 싶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서비스형 블로그를 이용했다면 나는 이곳을 진작 버렸을지도 모른다. 변방의 먼지여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 글을 쓰고 있고, 어떤 심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한때 독립 언론, 1인 미디어는 블로그에 있었고, 이제 독립 언론과 1인 미디어는 유튜브에 있으니(나는 방금 뉴스민에서 올린 홍준표의 폭언과 대구퀴어문화축제의 현장 영상을 보았다) 이런 심정적 영향은 그저 추억 소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은 이 심정은 무엇일까?
… 사실 나는 이 글의 초안을 5월 초에 작성했었다가 한동안 방치했다. 그리고 다시 작성하고 새롭게 고치고 고민을 덕지덕지 붙이며 중언부언하고 있다. 그 사이 아쉬운 감정은 계속 남지만 이글루스의 종료가 한 시대의 종말은 아니라는 사실은 조금 기분이 묘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블로그는 여전히 새로운 이름으로 계속될 것이고, 그저 이용자가 계속해서 줄었고 수익을 내기 어려웠던 서비스의 운영 종료는 웹 시대에 익숙한 일이다. 구글도 가망 없는 서비스는 가차 없이 종료시키는데 이글루스의 종료가 또 무어 그리 큰 일이라고… 그럼에도 이글루스에서 논쟁 하고 싸우면서도 사용했던 이들에게, 한 시대의 기억을 기록한 서비스를 만든 이글루스 관계자들에게 어떤 흔적을 보내고 싶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