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역사, 논의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추정할 수 있을까? 새로운 퀴어 논의를 생산하는 이들에게 이 질문은 언제나 매우 어려운 문제다. 예를 들어 퀴어 이론의 역사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퀴어 이론의 역사를 쓰는 작업은 그 작업을 진행하는 이들의 정치적 입장, 사회적 위치, 이론적 배경 등을 말해준다. 어떤 이들은 게일 루빈의 1984년 논문 “성을 사유하기”를 그 출발점으로 삼으며, 또 어떤 이들은 1980년대 에이즈 활동을 언급한다. 혹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논의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 경우도 있고 프로이트나 데리다, 라깡을 불러오기도 한다. 혹은 미국에 거주하는 라티나 페미니스트의 1970-80년대 이론적 성취를 그 출발점으로 삼기도 한다. 이 모든 기원은 퀴어 이론의 역사가 그 자체로 해석과 해석이 경합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의미하며, 이러한 경합이 역사적 기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퀴어 이론의 역사는 이미 다양한 해석 경합 속에서 구축되는 과정에 있다.
그럼 무성애 이론의 역사, 존재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추정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무성애와 관련한 많은 논의를 충분히 읽지 못했고 그래서 이와 관련한 공부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한국에는 이미 무성애를 전공 삼아 연구를 하는 연구자가 있으니 나의 이 글은 부끄러운 메모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의 공유라는 측면일 것이다.
무성애의 역사를 다루는 논의는 대체로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병리화의 역사고 다른 하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사다. 병리화의 역사를 요약하면, 1980년 DSM-III판에 억제된 성욕(Inhibited Sexual Desire)이라는 진단명으로 등재되었고, 1984년에는 성욕감퇴장애(Hypoactive Sexual Desire)으로 재명명 되었다. 그러다 2013년 무성애 정치를 수용하며 DSM은 성욕감퇴장애는 여성 성흥분장애(Female Sexual Interest/Arousal Disorder)와 남성 성흥분장애(Male Hypoactive Sexual Desire Disorder)로 구분되었고 무성애자로 정체화한 경우는 제외시키도록 했다(조윤희 2022, 128-129). DSM은 익히 잘 알려져 있듯, 동성애를 병리화했었고, DSM-III판은 트랜스젠더퀴어를 정신병리화했던 바로 그 진단 규범이기도 하다. 또 다른 역사는 커뮤니티의 역사인데, 이 역사는 대체로 1990년대 소규모 커뮤니티가 있었지만 2001년 AVEN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활발해졌다고 논의된다. 이것이 무성애 역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반복해서 다뤄지고 있다(무성애와 관련한 상당수의 문헌에서 대체로 이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나는 정확하게 이런 방식의 역사 쓰기가 무성애의 역사를 쓰는 작업을 어렵게 만드는 동시에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하려 한다.
무성애자 존재의 역사, 운동의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AVEN과 관련이 있다. 한편으로 AVEN은 무성애 운동사, 이론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무성애 온라인 커뮤니티이며, 무성애를 개념화하고 범주화하는 작업을 진행했으며, 토론의 장을 형성하며 무성애를 논의 가능한 장으로 위치지었다. 또한 초반의 무성애 연구는 상당수가 AVEN의 내용, AVEN의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것은 AVEN의 역할이 갖는 무게이자 의미이며, 성과이자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의의는 무성애 운동과 연구가 진행되는 한 계속해서 언급되고 평가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AVEN의 잘못이 아니라, AVEN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방식은 AVEN을 무성애자 존재, 무성애 운동, 무성애 연구의 시작처럼 인식하도록 하는 착오를 정당화한다. 예를 들어, 무성애 운동을 말할 때 AVEN부터 언급하는 것은 대체로 큰 무리가 없는 방식이다. AVEN 이전에 존재했던 활동이나 논의가 아직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AVEN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작업은 대체로 무난한 일이며, 이것이 상당히 불편할 때에도 딱히 뭐라고 문제삼기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AVEN 이전을 상상하지 않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하나의 단체가 예상보다 더 크게 성공하고 유명세를 떨칠 때, 또한 운동 내에서 영향력이 강력해질 때, 어떻게 다른 가능성을 사유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지의 예시가 될 수 있을 정도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AVEN의 잘못이 아니니 AVEN을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AVEN을 언급하는 이들이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 AVEN 이전의 역사는 어떻게 탐색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한 번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 DSM-III판에 무성적 실천(혹은 억제된 성욕)이 등재된 그 사건에 주목하고 싶다. 어떤 증상이나 현상, 태도, 상황이 DSM에 등재된다는 말은 많은 것을 상상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1950년대 나온 DSM-I판에 동성애가 등재되었고, 1980년 DSM-III판에 트랜스젠더퀴어가 등재되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 호모섹슈얼리티라는 용어는 1860년대 처음 주조되었을 정도로 긴 역사를 갖는다. 트랜스젠더퀴어 역시 최소한 1900년대 초반에 동성애와는 구분되는 명명을 가진다. 이들 범주가 DSM에 등재될 때까지, 존재와 관련한 논의는 상당히 많았고, 특히 이들을 범죄화할 것이냐 신의 저주이자 천벌로 취급할 것이냐 병리화할 것이냐는 논쟁은 나름 빈번했다. 그러다 사회적 의료화 과정에서 이들 범주는 모두 의료 진단 범주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 역사를 상기하면서, DSM-III판에 무성애와 관련한 범주가 추가되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적 욕망을 느끼지 않거나 약하게 느끼거나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을 문제가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이를 논하는 장이 꽤나 오래 펼쳐졌다는 뜻이다. 혹은 성적 욕망이 있음을 인간의 본능적 욕망으로 삼고자 하는 사회적 기획이 작동했고, 이 기획에서 무성적 존재를 문제삼으며 치료하고 교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상당히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그런 논의가 축적되면서 1980년 DSM에 처음 등재되고, 1984년 다시 명칭이 수정되는 일련의 과정이 발생한다. 만약 무성적 삶을 문제 삼거나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회적이고 의료적인 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왜 DSM에 추가되었겠는가. 혹은 무성적 실천이 인간 본성에 위배되는 행태라면 왜 DSM-I판에서부터 등재되지 않고 나중에 추가되었겠는가. 이와 관련한 한 근거라면 한국의 1970년대 후반 정신병리화와 관련한 논의에서 무성애로 해석할 ‘억제된 성욕’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흔적은 무성애자 정체화의 역사로 논의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무성적 실천을 문제 삼고자 하는 사회적 태도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가능하게 한다.
이런 관점으로 역사를 다시 읽으면 1980-1990년대 퀴어 이론이나 섹슈얼리티 이론과 관련해서 다시 독해할 수 있는 문헌이 상당히 많다. 로쓰블럼의 『보스턴 결혼』, 혹은 로쓰블럼이 2000년에 출간한 논문, 혹은 1994년에 나온 트랜스젠더퀴어의 의료적 조치 이후 성적 지향이 변하는 경험 등을 다룬 논문 등은 모두 무성애 실천을 언급한다(이것 말고도 여럿 있다). 이들 문헌은 무성애 실천을 본격적으로 논하지는 않지만, 무성애적 실천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록해둔다. 예를 들어 아론 데버가 1994년 트랜스젠더퀴어의 성적지향과 관련해서 다룬 논문은, 의료적 조치를 경험하며 누구에게도 끌림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변한 사람을 기록해둔다. 이 답변을 한 사람은 무성애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별도의 항목으로 기록하겠다는 연구자의 태도는, 당시 학제에서 무성애를 본격적으로 논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커뮤니티에서 혹은 친구 사이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가 있었음을 짐작하도록 한다.
여기까지 읽은 이들은, 나의 글이 가정과 가설과 상상력에 근거한 추론이라는 점을 쉽게 파악할 것이다. 하지만 가설과 가정, 상상력에 근거한 추론은 모든 새로운 논의와 존재의 근거를 마련하는 역사적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다. 대표적으로 트랜스젠더퀴어의 역사를 다루는 작업이 그러하다. 당연히 동성애가 가장 먼저일 것이라고 믿으면 트랜스젠더퀴어의 역사는 언제나 가장 최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정과 가설에 근거한 추론으로 접근하면 새롭게 해석할 단서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나는 이런 추론과 상상력의 힘을 믿는다. 지금 이 말이, 무성애는 상상력의 추론에만 존재하는 범주라는 말이 아니라, 훨씬 많은 곳에 흔적이 남아 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그 흔적이 충분히 독해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를 다시 질문할 필요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병리화의 역사를 다시 해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병리화, 진단 범주로의 등재는 그 시기가 존재의 출발점이 아니라 그 작업을 위해 훨씬 오래된 논쟁의 역사가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자 지표가 된다. 그렇다면 병리화와 관련한 논쟁은 부정적 기표, 낙인의 근거일 수도 있지만 존재의 흔적을 기록하기 위한 초기 언어의 등장으로 독해할 수도 있다.
+ 이 글에는 2023년 1학기 수업 시간에 무성애를 다루며 진행한 토론의 영향이 일부 남아 있다. 이 글에 쓴 내용 자체는 나의 아이디어겠지만, 수업에 함께 하며 무성애와 관련한 아이디어와 고민과 질문을 공유해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50H50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