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의 행사에 참여했다. 뭔가 말을 더 많이 해야 할 거 같은 입장으로 참가했는데 서두에 잠깐 빼면 단 한 마디도 더 덧붙일 수 없었는데 기획 때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참가자들은 할 이야기가 한가득이었고 그래서 시간이 부족하다 싶었다.
그런데 좀 다른 방향으로 고민이 맴돌았는데, 과거를 고인물이나 썩은 물이 아니라 어떻게 현재적 의미로 재상연할 수 있을까였다. 여기에는 내가 올 9월부터 처음으로 학부 수업을 하면서 든 고민이 얽혀있다. 대학원 수업을 하면서는 이런 부담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학부에서 수업을 하면서는 몇 년 전 사건을 당연히 알 거 같은 시건으로 예시를 들어도 괜찮은지가 애매했다. 이제와 고민하면 그렇게 심각하게는 필요는 없는 고민이었지만 처음하는 수업의 부담이 그렇듯 예시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조율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잘 한 주차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반성폭력 운동사를 다룬 주차와 1990년대부터 2010년 즈음까지의 한국 퀴어 인권 운동사를 다룬 주차였다. 각 주차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역사를 개괄적으로나마 알아둔다면 나중에 관련 활동이나 업무를 할 때 출발점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고민이 있었다. 내가 학부 때는 들을 기회가 없었지만, 대신 학부에서 들은 과목 중에 페미니즘 고전 강독이 있었는데 이 수업은 지금도 유용한 토양이다. 암튼 두 개의 두차를 거치며 과거 예시에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과거 이야기가 부담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현재의 바뀐 맥락은 모른체 ‘라때’와 같은 소리나 하며 철지난 이야기만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주는 워낙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다보니 과거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는 큰 어려움이다.
그러면서도 과거 혹은 역사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고민에 휩싸이는 이유는 매번 새로운 사건처럼 갱신되는 상황, 단절과 단절로 고립되는 상황 때문이다.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현재는 고립된다. 계속 이야기하고 계속 떠들어야 사람들이 잊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전파될 수 있다. 이것에 실패하면 과거 사건은 공백이 되고 가해자는 쉽게 돌아오는 일이 되더라.
문제는 새로운 자리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과거 이야기를 적절하게 말하는 것과 관련한 재주가 나에게는 없다는 점이다. 당신이 격은 사건이 과거에도 있었는데 그래서 당신이 겪은 일이 별것 아니라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사건이 여전히 반복되어 암을하다는 것도 아닌 의미로, 그 사건을 해결하며 만든 얼마간의 변화가 축적되고 있다는 의미로. 이것을 나는 간결하게 잘 말하는 재주가 없고, 그래서 행사 내내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한가득이었지만 꺼내면 3시간을 말할 거 같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할까 싶었지만 2014년부터 다루는 자리에서 1995년을 말할 수는 없지 않나라는 부담도 있고. 누구도 부담을 주지 않았는데 괜히 혼자 그런 부담이 있었다.
그러다 문든 친구에게 “해마다 2월이나 3월, 줌으로 한국 퀴어 인권 운동사를 무료로 4~5시간 짜리로 강의를 해야겠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물론 안 하겠지만;;;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계속해서 접점을 갖도록 할 수 있을까.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료로 한다면 다른 사람을 부르기 힘드니… (아… 그러고보니 한국 퀴어 운동사 책이 나올 예정이구나…)
이런 고민 속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많이 배웠다. 대전과 서울이라는 지역 차이, 태어난 시기에 따른 경험 차이, 그리고 2018년이라는 시간적 변곡점에 대해. 이런 자리, 반기에 한 번씩 열면 좋겠다. 그리고 연극에 문외한이라는 말 그만해야지…
+행사때 농담하다 이상하게 말했는데, 내가 연극장에서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구자혜 작가/연출님께는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이상하게 말해서 죄송하고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