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벼개가 된 사나히”를 보며 불현듯 구자혜 연출의 공연이 전반적으로 그렇듯 이번 작품 또한 완벽하게 구축한 한 편의 시와 같다고 느꼈다. 뺄 것 없고 괜히 나온 장면이나 대사가 없으며 그냥 쓰는 무대가 없다. 모든 것이 한 편의 시처럼 어울린다. 아, 그래 이게 그동안 내가 구자혜 연출의 작품에서 느낀 공통된 느낌이었구나.
소년은 계속해서 남성성, 남성되기의 의미를 탐색한다. 삼마이, 니마이, 가다끼, 그리고 왕에 이르기 다양한 형태의 남성성을 탐색하고 그것에 내재하고 외재해는 모순과 의존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그리하여 꿈에서, 왕과 벼개 사이의 이분법을 벗어나기 위한 고민과 괴로움을 계속 밀고 나간다. 그 모든 곳에 여역배우가 있고 그들은 남성성, 혹은 남역이 구성되는 방식을 명확히 지적한다. 남성성은 여성과의 관계에 의존해야만 비로소 완성되지만 여성이 죽어 사라져야 그 성질이 완결된다. 여기에 2막 아랑애사가 중요하다. 피를 흘리며 죽은 시체, 여성을 존재로 다시 사유하는 태도. 그리하여 아랑애사는 어떤 의미에서 소년이 여성국극단에 들어가 모색하고 변형하려는 남성성의 한 형태이자 윤리에 대한 질문이다. 무엇보다 남역배우라는 말은 남성성이 본질이기보다 계속해서 배우고 수행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압축한다.
무엇보다 이 극은 처음부터 계속해서 비투비다. 남역배우되기와 비투비의 실천이 만드는 퀴어함이 또 다른 매력이며 모든 곳에서 모든 규범을 흔드는 꼬마의 역은 작품의 주제를 재현하는 핵심이다.
한 번 더 볼 예정인데 또 한 번 더 볼까 싶다. 진짜 정말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