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두 번째 입원

밤새 몇 번 토를 하는 것을 봤다. 궁시렁거리면서 아침에 치워야지 했다. 아침에 보리는 평소와 다르게 울었고 자신이 토한 자리로 나를 데려갔다. 이 자리에 토했으니 치워달라는 걸까… 그리고는 근처에서 식빵을 구웠다. 뭔가 기운이 없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병원에 가자고 했다. 늘어졌지만 활기가 넘쳐서 이게 일회적으로 토한 건지 어쩐 건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안심비용이다 생각했다. 24시간 운영하는 대형병원이지만 정규 운영 시간 외에는 응급으로 접수가 되고 그럼 비용이 많이 드는지(다행스럽게도 응급 진료를 한 적이 없어서 모른다) 9시가 지나야 접수를 받아주기에, 일단 토한 걸 좀 치웠다. 대략 10곳?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나서는데 비가 잔뜩 내리고 있었다. 비가 그치길 기다릴 수는 없으니 대충 비를 맞으며 병원으로 갔다. 다행이라면 병원이 걸어서 10분 정도에 위치하고 있으니 비를 좀 맞아도 10분 정도였다.

얼마간 대기했다가 의사와 상담을 했다. 많이 토해서 데려왔는데 몇 해 전 일주일 정도 입원한 이력도 있고 이제 보리가 11살이 넘었으니 조금만 안 좋아도 병원 데려오는 게 낫겠다 싶어 데려왔다고 했다. 의사도 보리가 워낙 활발한 상태라 심각한 거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건강검진한다 생각해서 이것저것 검사는 해보겠다고 가볍게 말했다. 뉘앙스는 별 것 아닐 거 같다는 말투. 나도 좀 안심이 되었다. 그래, 지난 8월 귀리도 자주 토해서 병원에 왔지만 사흘 정도 약을 먹으면 괜찮은 상태라고 했으니 이번에도 기껏해야 그 정도겠지(그날 의사는 귀리의 근육에 감탄 또 감탄하셨다. 정말 뱃살 빼면 다 근육… 근육에 감탄할 수 있는 건강 상태였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는 검사는 1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불안해야 할까, 어째야 할까, 안절부절 못 하는 상태였지만 진료 중인 동물이 여럿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불안을 억누르며 기다렸다. 그리고 좀 더 기다리니 의사가 불렀다.

췌장이 안 좋다는 말을 시작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수치를 말해줬다. 여러 수치가 문제였는데 일단 췌장이 가장 나빴다. 췌장 수치의 상단이 3.6 정도였고 급성으로 나빠지면 10정도가 나온다고 했다. 보리는 27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나쁜 수치는 췌장의 수치와 모두 연계되는데 인과관계는 아직 확인이 안 되는 상태였다. 보리는 과거에도 췌장을 비롯한 장에 염증이 있고 자가면역질환이 있어서 일주일을 입원했는데 일단 비슷한 부위였다. 하지만 동일한 질병인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기본 검사만 했으니까. 의사가 뭐라고 했더라… 흉수나 폐에 물이 찰 수 있는 위험은 몇 해 전에도 들었는데 아직 그런 증상은 없다고 했다. 이제 장기적으로 집에서 보살피고 관리하는 일을 해야 할 거라고 했다. 의사의 그 말에 완치의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걸, 지금 깨달았다.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주기적으로 방문해야 하고, 먹고 있는 처방사료를 바꿔야 할텐데 입원해서 검사해본 다음에 새 처방사료를 결정한다고 했다. 췌장의 상태를 추적하는 어떤 기구가 나왔다고 들었는데(내가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 강아지에게는 잘 맞는데 고양이에게는 오류가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어린/청년 고양이는 췌장의 수치와 활발함 사이에 상관성이 있어서 수치가 나쁘면 기운이 없는데, 노령 고양이는 활발하거나 상태가 괜찮은데 수치 검사를 하면 더 나빠진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기가 좀 당혹스러운 부분이었다. 수치는 나빠지는데 겉으로 보는 상태는 괜찮다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갈 주요 단서가 기력인데 그것이 지표가 될 수 없다면 어찌해야 할까. 아 그리고 신장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또 뭐가 있더라…

암튼 그래서 일단 며칠 입원해서 이런저런 검사를 더 하고 수액을 맞추고 췌장 수치가 떨어지는지를 확인하고… 암튼 며칠 그러기로 했다. 뭐가 되었든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비는 그쳤고 빗길을 같이 한 보리도, 이동장도 병원에 둔 채 H와 집으로 돌아오니, 아침에는 발견하지 못한, 밤새 토한 더 많은 흔적이 보였다. 그래서 아프다고, 자신이 토한 자리에 나를 데려갔구나 싶어 보리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어쩐지 이동장에 넣었을 때 반항을 안 하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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