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는 안식년(?)을 맞아 논문을 두 편 썼다. 하나는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의 역사를 재구축하기“로 서구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의 역사를 2물결의 맥락에 배치시키는 한편, 제1물결 페미니즘 운동으로 확장하는 작업이었다(부제를 잘못 썼다). 오랫 동안 대중강연에서 떠들던 내용인데 이제야 글로 정리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검색한 것의 한도 내에서는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의 역사를 제1 물결까지로 확장하고 재해석한 연구 작업이라 논문에 이와 관련한 문구를 쓸까 고민했다. 하지만 내가 못 찾은 논문이 있을까봐 무서워서 쓰지는 못했다(학술대회나 어떤 행사 자리에서 관련 논의가 없어서 우리가/내가 처음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이전 기록물이 있다보니, 퀴어아키비스트의 입장에서도 공부노동자의 입장에서도 ‘내가 처음이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다른 하나는 “잊힌 미래, 도래할 과거: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를 한국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의 역사적 가능성으로 읽기“가 어제 나왔다. 그 유명한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를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의 흔적으로 다시 독해한 작업인데, 트랜스젠더퀴어 인물을 중심에 두었지만 당시의 시대적 맥락에 재배치한 작업이기도 하다. 심지어 심사평도 상당히 좋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 논문을 작업하는데 진짜로 2년 걸렸고 그 과정에서 수십 번 고쳤다. 애초에 개봉 30주년에 맞춰 출간될 수 있게 투고 준비를 했지만 뜯어고치는 작업이 많아서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누구도 기념하지 않고 누구도 기억하지 않으니 그냥 그러고 싶었달까. ㅋㅋㅋ 무엇보다 70% 정도 초고를 작성한 상태일 때 원고지로 300매가 넘는 분량이라 다 뜯어고치느라 또 시간이 걸렸다. 300매면 논문 두 편의 분량인데 같은 영화로 논문 두 편 쓸 것도 아니라. 그래서 논문에서 버려야 했던 논의 등을 말과활 3강에서 신나게 풀어낼 거 같다.
2024년에 나온 것 같지만 기록상으로 2025년에 나온 [퀴어 한국사]도 있지. 이 책은 출판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잘 써서가 아니라 새로운 발굴이 아니라 해석과 해석이 경합하는 장을 만들기 위한 시도여서 그렇다. 빠진 내용은 빠져서, 해석이 충분하지 않은 내용은 충분하지 않아서 다른 논쟁의 장, 새로운 해석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퀴어 역사를 더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역사나 사건을 찾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 해석을 재평가하고 완전히 다른 해석의 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퀴어 (역사) 연구의 장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2025년의 가장 좋았던 텍스트.
영화는 단연 [그저 사고였을 뿐]. 4번인가 5번 봤다. OTT나 DVD로 발매되면 좋겠는데 어떨지.
연극은 하나를 꼽기 힘들지만 내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작품을 제외하면, [벼개가 된 사나히], [납과 복숭아], [웅크리다]를 꼽고 싶다. 이렇게 쓰면 다시 떠오르는 [미수습] 등 여러 작품을 더 언급하고 싶지만…
소설은 많이 안 읽는 편이지만 [디트랜지션, 베이비]를 꼽겠다. 번역과 역주 문제가 있고 그래서 호영님의 비판글을 매우 좋아한다. 좋은 비평이라고 고민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책이 잊힌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슬퍼서.
아무려나 이제 2026년이다. 올해도 논문을 쓸 것이고, 연극 제작 작업에도 참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거야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고, 올해는 먼쓸리퀴어 작업도 할 것이고, 또 재미있는 일이 많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