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도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믿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아프다고 무겁다고 느끼고 있다.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지식자랑 하는 것과 그것을 통해 변태하고 자신의 위치를 이동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여러 번 느꼈고, 그것과 관련해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말 논문을 쓰며 글의 흐름과 ‘논리’적인 설득력이 있다면, 사람들이 수긍할 것이며 자신의 위치를 바꿀 것이라고 믿었나보다.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아닌 척 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란 말은 그렇게 변했나보다.
한 선생님의 혐오 아닌 듯 혐오인 듯한 발화에 아무렇지 않다고 느꼈다. 분명 당시엔 그랬다. 그래서 곧 만나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나보다. 그것이 지금까지 몸을 무겁게 하고 있다. 다시 연락하기가 망설여지고 있다. 글을 통해서 말하고 있던, 비판하고 있던 바로 그 지점으로 선생님은 말을 했었다.
글을 쓴다는 건 무엇일까. 글쓰기 자체를 회의하진 않는다. 목소리를 찾는 유일한 길이기도 한 글을 어떻게 회의할까. 다만 다시 한 번, 지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과 그것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이동하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의 차이를 실감하고 있다. 매 순간 아프게 겪는 일이다.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선 트랜스나 이반queer를 말하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질문하지는 않는 방식들. 물론 그 선생님은 지식으로 동원하진 않았다. 아픈 건 글로 소통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더 아픈 건 글로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몸이 무겁다.
선생들의 코멘트가 궁금해요. 사실 기말페이퍼에 성적 말고 열심히 코멘트 해서 돌려주는 선생이 거의 없어서 많이 답답했던것 같은데, 김은실샘도 마찬가지죠? 성적은 너무 많은 의미를 표현하는 상징같은 지경인데 해석의 몫도 학생에게! 있는 것인지. ㅋㅋㅋ
크크크. 정말이지 기말논문 내는 것도 빠듯한데 성적의 의미도 학생들이 해석해야 하니, 흑, 너무 가혹하단 느낌도 들어요. 흐흐흐.
음…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 하는게 가장 나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갑자기 뭔 소린지.. -_-;;)
맞아요 맞아요. 정말 그래요. 이해하는 척 하는 건 결국 고민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겠다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