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과 바람이 강하다보면 어느 순간 부인과 부정으로 변한다. 바라지 않는다고, 원하지 않는다고 그런 걸 바란 적이 없다고. 부인과 부정은 나와 당신을 분리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며, 애도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런 시도는 루인에게 언제나 부질없는데, 부인과 부정을 하고 있는 순간은 이미 당신과 루인이 하나가 된 상태이고, 그래서 애도할 수 없는 상태이며 우울로 변한 상태이다. 이렇게 우울로 변한 상태에선, 더 이상 당신을 만나길 원하지 않는데, 이미 하나가 되어버린 당신과 루인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과 루인이 하나가 된 결과로 발생한 우울이 모든 것의 원인이 되고 당신이란 원인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무엇이 원인인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영원히 만나지 않길 바래. 우울은 살아가도록 하는 힘이 되니까.
[#M_ 그리고.. | 왜!.. |
그나저나 일련의 이런 우울과 관련한 글들은 왜 누군가의 이론에 기대고 있는 것일까. 혹은 왜 자꾸만 누군가의 분석에 기대어 루인의 삶을 구성하는 걸까._M#]
분석해서 이유를 대지 않으면, 왠지 시원하지 못한 느낌이랄까. 저도 그 기분 알것 같아요. 저 역시 저의 모든 행동과 사고에 이유와 근거를 대야만 하거든요.. 그게 피곤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또 위안을 얻고는 하는것 같아요. 그런 분석에 기대는 자신이 참 너무하다 싶기도 하지만.. 왠지 납득하게 되면 더 편하게 그 상황을 즐기게 될 수 있는것 있잖아요 ^^
흐흐. 정말 그래요. 어떻게든 그 상황을 납득시켜선 나중엔 그런 상황을 즐기고 있기도 하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