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글: “‘미 대선전 정치혁명 예고’ 흑인 1호냐, 여성 1호냐“
[#M_ 캡쳐확인.. | 오랜 만에 이미지 파일? 크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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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미국의 민주당 대선 후보가 “흑인” 대 “여성”으로 보일 지 모르겠지만, 루인에겐 그나마 “흑인남성”과 “백인여성”으로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몸앓는다.
“흑인 대 여성”이라는 구절은 “모든 흑인은 곧 남성”이며 “모든 여성은 곧 백인여성”임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흑인”은 “흑인남성”이 대표하고 “여성”은 “백인여성”이 대표한다. 이럴 때, “흑인여성”은 어디에 위치하나? 이런 식의 표현 속에서 “흑인여성”은 언제나 부재하거나 둘 중 하나 만을 선택하도록 강요 받는다. “흑인여성”이지만 “흑인” 아니면 “여성”이라는 배타적이라서 공존할 수 없다고 요구하는 정체성에 속해야 한다.
이런 언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민족이 중요하냐 여성운동이 중요하냐”와 같은 말은 이제 ‘상식’이다. 얼마 전엔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트랜스젠더의 젠더 문제가 그렇게 시급하냐”라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트랜스젠더는 오직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만 지니고 있을 뿐 이라서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학생이거나, 등등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동시에 이런 말 속에는 “트랜스젠더 중엔 굶어 죽는 사람이 없다”라거나 “굶어 죽는 사람 중엔 트랜스젠더가 없다”라는 교묘한 의미를 품고 있다.
이런 식의 언설들은 언제나 우리를 단 하나의, 단일한 정체성이기만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나눈 범주 속에 고착해 있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루인은 트랜스이기도 하지만 채식주의자이기도 하고 부산지역 출신의 서울거주자이기도 하다. (부산지역 출신의 서울 거주자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세한 건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 레즈비언이기도 하고 이성애자이기도 하고 퀴어(queer)이기도 하고 변태이기도 하다. 🙂
“흑인 1호냐, 여성 1호냐”란 식의 표현은 언론이 만들어낸 선정주의라고만 치부하기엔 꽤나 무서운 말이다.
그래서 80년대에 글로리아 헐, 바바라 스미스가 엮은 책 중에 All the women are white, all the blacks are men, but some of us are brave 라는 흑인여성주의책도 있었지요… 루인님 블로그 잘 보고 있어요!
멋진 문장이에요! 헤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