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약과 비염약을 샀다. 물품 목록을 적고 오늘 오후엔 서울역에 갔다 왔다. 부산에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일주일 정도 부산에 머물기로 했다. 무려 일주일.
작년 추석이 끝나고 서울 오는 길에 다짐했다. 다음 설엔 어떤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부산에 가지 않겠노라고. 그러면 다음 추석은 논문을 핑계로 가지 않을 수 있고, 그렇게 일 년이 넘는 시간을 부산에 가지 않고 지낼 수 있겠구나, 했다. 그리고 사전 준비도 좋아서, 작년 말 즈음부터 설에 못 내려 갈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일정이 있어서 못 갈 수도 있다는 핑계들.
1월이 끝나고 2월이 들어섰을 때도 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갔다 오기로 했다. 그것도 무려 일주일이나.
쉬고 싶다는 바람이 몸을 채우고 있다. 쉬고 싶다고?
부산에, 이성애혈연가족들이 사는 곳에 가면 쉰다고 하기엔 스트레스만 잔뜩 받아 오기 마련이다. 졸업 후의 일부터 결혼, 돈벌이 등등은 기본이고 루인의 머리스타일부터 매니큐어나 각종 표현방식들 까지 모든 것이 간섭의 대상이고 그러다보면 스트레스가 넘치기 시작해선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다고, 속으로 외치곤 한다. 그래서 이번 설에 내려간다면, 설 전날인 토요일 밤 늦게 내려가서 일요일 설을 지낸 다음, 월요일에 올라오는 걸로 할까도 했다.
그러나, 이런 예정된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내려가서 쉬기로 했다. 루인에게 쉰다는 건, 그저 하루 종일 씻지 않고 이불 속에 뒹굴며 지낼 수 있는 생활을 의미한다. 그러며 책이나 글과 놀고 싶었다. 서울에 머문다고 해서 책이나 글과 놀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몸과 부산에서의 몸은 너무도 다르다.
하루 종일 서울의 연구실에 머물면 책을 읽다가 종종 업무를 처리하기도 하고 인터넷과 놀기도 하고 그런다. 하루 종일 부산의 방에 머물 때면, 그저 하루 종일 책이나 글과 논다. 쉬고 싶을 땐 그냥 멍하니 있어도 상관없다. 인터넷도 없고 컴퓨터도 없다(피시방엔 안 가니까). 그러니 그저 여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20년 가량을 산 곳이지만, 부산엔 만날 친구도 없고 그래서 약속이란 것도 없다. 서울에 있다고 해서 딱히 약속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부산에 머물면 누군가를 만날 가능성 자체가 없다. 이런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긴장해 있는 몸을 좀 풀어 주고 싶다. 하루 종일 긴장 상태에 살고 있는 몸을 풀어 주고 그렇게 느슨해진 몸을 느끼고 싶었다. 예정된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해도,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긴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해도, 적어도 지금의 스트레스에서 만큼은 벗어나고 싶었다. 이 지독한 우울증에서 좀 벗어 나고 싶었고. 몸과 하나인 우울증이 부산에 간다고 덜하겠느냐만은, 경험 상 안다. 우울하다고 해도 그 정도가 달라짐을. 그 느낌이 달라짐을.
그래서 부산에 일주일 정도 갔다 오기로 다짐했다. 오늘 간다.
#만화 [20세기 소년]을 읽다보면 켄지의 음악을 트는 디제이가 나온다. 가수도 없고 듣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주구장창 같은 음악만 틀고 있는 디제이. “디제이는 없어도 음악은 흐른다”란 말을 쓸 때마다 그 디제이가 떠오른다. 정말, 디제이는 없어도 음악은 흐를까? 어쩌면… 🙂
근데, 루인! 겸이 만든 그 씨디 언제 줄거에요? 다 보긴한건가요? ㅋㅋ
끄아악! 잊고 있었어요ㅠ_ㅠ
언제가 괜찮아요?
그 영화 보고 마니 충격받았을까봐 좀 걱정했어요 ㅋㅋ 부산은 잘다녀온것 같아 좋아보여요, 시간은 아무때나 좋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시간을 맞춰서 따로 얼굴을 봐야할듯한데…
암만해도 그래야겠죠? 언제가 괜찮아요? 대체로 학교에서 생활하긴 한데, 루인보단 시진씨가 더 바쁘니까, 괜찮은 시간 알려주면 맞출게요 🙂
아님, 내가 서강대 그리고 갈께요 ㅋ 얼굴도 함 볼겸 ^^ 편한때를 알려주세요
댓글에 학교 이름을 적으시면..ㅠㅠㅠㅠㅠㅠㅠㅠㅠ
깜짝 놀라서 비공개로 바꿨어요.. ㅎ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