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손 + 세월 속에 변하는 부모’님’

어제 낮, 지도교수를 만났다가, 피부가 하얗다고, 예전에 노랗던 피부가 좋아졌다는 말을 했다. 부산에 갔다 와서 그런가 보다고 답했다. 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부산에서 루인의 생활은, 자고, 밥 먹고, 놀고, 밥 먹고, 놀고의 반복이었으니까. 정말 영화와 잠깐 잠깐의 장보러 간 것 외에는 종일 집에서 뒹굴었는데 피부가 안 좋아 질 수가 있으랴…. 케케.

부산에서, 장보러 갔다가 은행에 들려 잠시 머물던 사이 엄마님(요즘 ○○님이란 식의 표현을 통해 고정되지 않은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은 루인의 손을 보더니, 노랗다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엄마님이 몇 해 전에 그랬다며 걱정해서 무슨 이유에서냐고 물으니, 손이 노라면 영양실조의 징후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이런 말에, 무슨 소리냐고 말도 안 된다고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채식을 하면 영양실조에 걸린다는 식의 말들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엄마님의 이런 말은 루인의 채식을 문제 삼는 발언으로 넘어 갈까봐 언제나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었다. (채식을 해서가 아니라 채식을 하건 채식을 안 하건 상관없이 음식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으면 누구나 영양실조에 걸린다. 그리고 채식이 건강에 더 좋다, 몸에 더 좋다는 말은 채식을 하면 영양이 부족하다, 영양실조에 걸리기 쉽다란 말과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번엔 그저 수긍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영양실조라는 것이,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상태, 그리하여 몸에 영양분이라곤 전혀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영양분이 하나만 부족해도 의학에선 영양실조로 판정한다는 얘길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테면 다른 영양분은 다 충분한데 철분이나 캴슘과 같은 특정 영양소 하나가 부족해도 영양실조로 판정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이유로 부산에 간 것이기도 하다. 몸의 위태로움이, 다른 이유들과 겹치면서, 부산에 가야겠다고, 다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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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두 번 이성애혈연가족의 부모를 만나며 느끼는 건, 세월 속에서 변하는 모습이었다. 그토록 완강하기만 그분들의 달라진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루인과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ps는 무슨 말 속에 “네가 만약 결혼을 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붙이기 시작했고, 아빠님은 “언젠간 결혼 할 것 아니냐”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정년퇴임 이전에 결혼하라고 다그치기만 했는데, 이젠 루인이 결혼을 안 할 수도 있다는 걸 조금씩은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물론 여전히 루인이 결혼하길 바라지만 그럼에도 결혼을 안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이런 과정에서 여전히 “그래도 언젠간 결혼을 하겠지”라는 바람을 놓지 않고 싶어 하는 모습. 조금은 슬펐다.

그리고 이런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더 이상 신경질만 내지 않는 루인을 깨달았다. 예전 같으면 결혼 이야기만 나와도 신경질과 짜증이었는데, 지금에 와선, 헤헤거리며 씽긋이 웃기만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말들에 더 이상 짜증으로만 대처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죄송한 몸이기도 했다. “평범”하게 사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지만 “평범”함을 바라는 부모’님’의 바람 속에서 루인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고, 그럴 수도 없다는 걸 깨달으며 죄송했다. 어쩌면 영원히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것이 루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인지도 모르겠다는 몸앓이를 했다. (하지만 커밍아웃을 하지 않음이 마냥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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