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님을 살짝 따라하여, 잠깨기 용 글이랄까-_-;; 새벽 3시까지의 회의와 그럼에도 7시에 일어난 현재의 몸 상태는 비몽사몽…. 물론 회의가 12시를 넘어갔을 때부터 비몽사몽이긴 했지만;;)
키드님이 쓴 “책방 생각”과 혜림님의 댓글을 읽다가 문득 예전에 잠깐 알고 지낸 사람이 해준 얘기가 떠올랐다. 어릴 때 살던 집이 있던 건물의 반지하엔 책이 쌓여 있어서 맘껏 읽을 수 있었다는. 이처럼, 어린 시절 책방 혹은 도서관과 관련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부러웠다. 루인에겐 그런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까지 루인이 읽은 책은 거의 모두가 집에 있는 빨간 장정의 계몽사 세계문학전집과 친척 집에서 빌린 책들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에 도서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차라리 루인의 집에 있는 책이 더 많았달까. 루인의 집에 그 만큼 책이 많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학교 도서관에 그 만큼 책이 없었다는 의미. 책장 두어 개에 듬성듬성 있는 책들. 그것도 흥미가 안 가는 책들.
동네에 서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10분을 걸어가면 나오는 그 서점은 문구점을 겸한 서점이었고, 당시의 기억으로 꽤나 큰(지금이라면 동네서점이라고 기억하겠지) 서점은 초등학생이 가기엔 ‘먼’ 거리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행동반경이 좁은 건 어쩔 수 없군. -_-;;) 더 중요한 건, 서점이 있다고 해도 책을 살 돈이…. 그래도 언제였던가, 적은 용돈을 꾸준히 모아 책을 살 수 있는 만큼 모았을 때 아주 기쁜 몸으로 문구점을 겸한 서점에 신나게 걸어갔던 기억은 있다. 아주 선명한 그 설렘. 그곳은 아파트 단지의 복합상가의 한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주 좁은 곳이었고, 아동용도서와 문제집과 문구류를 동시에 파는 곳이었기에, 머물며 놀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그래도 그렇게 책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좋은지,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책을 읽었다.
읽을 책은 없는데 읽고 싶었기에,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열 번 이상 읽은 책이 꽤나 많았고 어떤 책은 몇 십 번을 읽기도 했다. 집에 책이 많은 같은 반 친구들이 참 많이 부러웠고 드물게 한 친구네 놀러가 책을 빌리기도 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마 루인에게 그나마 단골이란 의미의 책방이 생긴 건, 중학교에 들어가서였다. 이사를 한 동네(그래서 지금의 부산 집이 있는 동네) 아파트 단지에도 작은 책방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 곳은 웅크리고 앉아 책을 읽는 곳이란 느낌보다는 책을 사러 가는 곳이었다. 웅크리고 앉기엔 너무 서점이 너무 좁았고, 웅크리고 앉아 읽는 걸 용인받기엔 이미 중학생이었다. 읽고 싶지만 없는 책은 주문해서 구했고(루인의 개인주문은 이때부터였구나…. 흐흐), 당시 부산에서 가장 큰 서점인 영광도서는 루인에게 월례행사 아니 연례행사처럼 드물게 나가는 곳이었다. 가끔 외출을 했고 외출을 하면 가는 곳이 영광도서였다.
그 동네에 구립도서관이 있다는 건, 이사한지 3년 정도 지나 알았지만 그곳에서 책을 빌리기 시작한 건 아마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나. 방학 때 종종 부산에 내려가 있으면 구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곤 했다.
어린 시절 도서관 혹은 책방에 얽힌 기억이 없어서일까, 여전히 서점은 다소 낯선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서울에 와서 살며, 가끔 들리는 교보문고 역시 드문 외출의 목적지라는 느낌이 강하다. 지하철을 타면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거리는 아님에도(서울에서 지하철로 1시간 거리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란 걸 이제는 익숙할 만 한데도, 여전히 낯설다) 교보문고에 가는 건, 큰 다짐을 하고 미리 날짜를 정해서 몸을 준비하고서야 갈 수 있는 곳이란 느낌. 중고등학생 시절 영광도서에 가는 건 큰 행사와 같았듯, 그렇게 여전히 서점에 간다는 건 어떤 행사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도서관에 안 가는 건지도… -_-;; 이 말도 안 되는 기원 찾기 놀이;;;) 아, 물론 루인이 워낙 어디 나가는 걸 귀찮아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무려나 그래서일까, 교보문고에 갈 때마다 바닥에 앉아(요즘은 앉는 자리가 생겼더라) 책을 읽고 있거나 숙제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 뭔가 낯선 느낌을 받곤 했다. 서점 혹은 책방은 책을 사는 곳 그래서 책을 고르면 결제하고 서둘러 나와야만 할 것 같은 곳으로 경험을 한 루인과 그곳이 숙제도 하고 책도 읽는 도서관이자 놀이터이기도 한 아이들/사람들의 경험. 루인에겐 없지만 어린 시절의 책방이란 곳이 주는 그 어떤 느낌이 교보문고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루인에게 헌책방이, 특히나 헌책방에서의 알바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건,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그저 놀 수도 있구나, 란 걸 알바를 하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알바를 하다보면 어떤 꼬마는 일정 시간에 와선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부모님 혹은 어른들을 따라온 아이들 역시 한 곳에 앉아 책을 읽다가 갔다. 괜히 와선 한 번 쓰윽 둘러보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떤 꼬마는 책방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졸기도 하고.
혜림님의 댓글을 읽다가, 문득 루인에겐 부재하는 기억이란 느낌이 강했던 어린 시절의 책방 혹은 도서관이, 어쩌면 나이나 지역에 따른 경험일 수도 있다는 걸 느낌을 받았다. 나이라고 해서 몇 십 년씩 차이가 난다는 게 아니라, 급속도로 변하는 입시제도나 교육열풍, 입시경쟁의 정도에 따른 나이 차이, 그리고 살던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기억들. 책방과 서점을 다르게 경험한 키드님과 책방이나 서점이나 책을 파는 곳으로 경험한 루인과 교보문고를 놀이터로 경험한 혜림님…. 이런 식의 경험 차이와 기억을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가 재밌다고 느꼈다. 지금의 교보문고(로 대표하는 대형서점)를 경험하는 방식이 각기 다른데, 그 이유의 하나로 어린 시절의 책방 경험을 얘기할 수 있다는 건 더 흥미로운 일이고.
아, 잠깨기 용으로 쓰다보니 글이 참, 두서없다. (언제는 있었다고. -_-;;) 아무려나, 어린 시절 책방과 관련한 기억이 있다는 건, 루인에겐 참 부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