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곳도 많고 숨 쉴 곳도 많다.
지금 상황에서 상상 가능한 모든 가능성과 희망과 기대를 하나씩, 하나씩, 지워갔다. 실현 불가능하다고 해도 어쨌거나 상상가능한 일들, 기대하며 바라는 일들을 하나씩 지워갔다. 그렇게 가능한 모든 희망을 포기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이 왔을 때, 다른 상황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상황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다른 무언가를, 이전까지의 상황에선 불가능하다고 느낀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아마 1년 뒤엔 지금의 상황을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냥, 玄牝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1년 정도 지나, 다시 여름이 오는 어느 날이라면, 지금의 상황을 낄낄,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니, 사실, 지금도 킥킥, 웃으면서 말할 수 있다. 그저, 지금의 감정에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지금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석 달 뒤에, 아니면 6개월 뒤에,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참 유치한 일이다. 지금의 상황에선 좀 무거운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참 유치한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치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함으로써 상황을 다른 식으로 구성하고 싶다.
자꾸만 이렇게 막연하고, 내용을 종잡을 수 없는 글만 써서, 이곳에 오는 분들에게 미안하다. 이제 이런 글도 당분간은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