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2007.06.08. 20:30 아트레온 6관 9층 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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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 만에 영화관에 갔어요. 그 동안 나스타샤와 연구실 컴퓨터로 몇 편의 영화를 읽긴 했지만 아무래도 극장이란 공간에서 읽는 느낌이 있기에 무척 가고 싶었죠. 가니까 좋긴 좋더라고요. 흐흐.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해요. 몇 년 전만 해도 극장과 모니터 혹은 스크린 화면으로 무언가를 읽는 걸 싫어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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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없을 걸요?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그저 1편과 2편을 읽었으니 이왕에 완결편도 읽자는 속셈 정도랄까요. 시나리오를 완성하기도 전에 촬영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한 적도 있으니 그렇게 기대하진 않았어요.
그저 데비 존스의 원래 운명이,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야만 사랑하는 사람을 10년에 단 하루 밖에 못 만난다는 말에, 좀 아팠달까. 그 멋진 엘리자베스는 “이성애”결혼 서사에 맞춘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오는 장면에선 정말이지! (버럭!) -_-;; 2편에 엔딩크레딧이 나온 뒤, 영상이 있어서 이번에도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정녕 그런 내용이었다니! 버럭! 버럭! 흐흐. 무얼 기대했는지 말하고 싶은데, 이것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차마 말하지는 못 하고…
[#M_ 기대한 내용.. | 예의상 이렇게 가리기.. |
기대했던 건, 스패로우가 작은 배를 타고 여전히 바다를 항해하는 장면이나 뭔가 좀 망가지는 장면인데, 실재 나온 장면은… 흠…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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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 선택하길 잘했다고 느낀 건, 영화를 읽기 전에 일이 좀 있었기 때문이죠. 아니었다면 아마 영화에 대해 상당히 궁시렁 거렸을 듯.
영화를 읽으러 가기 전에 전혀 예상하지 못 한 당혹스런 일이 있었고, 그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로 갈피를 못 잡고 있었죠. 일이란 게 혼자 예상한다고 해서 그런 예상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은 피하고 싶었는데. 당혹스러우면서도 자꾸 웃음이 나는 상황. 그 일이란 게, 루인과 연결시키지 않으려고 한 글, 그래서 다른 별칭으로 기고한 글에 루인임이 명백히 드러나는 메일 주소가 들어간 거죠. 물론 이건 매체와 루인 간의 소통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일 뿐, 누구의 잘못은 절대 아니고요.
이 상황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영화관에 갔고, 그래서 영화를 읽을 수 있을 지가 걱정이기도 했어요. 이후에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될지 예상할 수 없고, 그래서 부담스럽기도 하더라고요. 근데 영화를 보는 동안에 이런 고민들의 무게가 바뀌기 시작했고, 영화가 끝났을 땐, “에이,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일명, 스노우캣형 반응)는 감정으로 바뀌었죠. 언젠가 감당할 일이라면, 차라리 지금 감당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달까. 영화에 집중하지 않아도 영화를 읽는데 큰 지장이 없고, 영화를 읽으면서도 이 일을 계속 고민하며, 스스로에게 물었죠. 무엇이 부담스러우며, 무엇이 두려운 거냐고.
언젠간 부딪혀야 할 일이죠. 그저 그 시간을 좀 더 미루고 싶었고, 그래서 부딪혀야 할 상황이 좀 더 빨라졌을 뿐, 크게 달라진 건 없죠. 그리고 지금 일로 기고한 글을 또 다른 식으로 위치 지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방향 전환인 셈이죠.
영화 읽으러 가는 전후에 이런 고민들이 있어서, 정말로 영화 내용은 10년에 한 번 만나는 운명이란 말에 아팠던 거 말고는 기억이 안 난다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