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의 진가는 한겨울 눈이 오는 밤이나, 그렇게 눈이 쌓여있는 시간에 느낄 수 있다. 지난겨울, 연구실 창문 밖에 있는 나무들이 눈꽃을 피웠을 땐 정말이지 북극에 와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어릴 때 읽은 소설의 한 장면처럼, 북극의 어느 지역에서 이글루를 만들고 그 안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랄까. 혹은 나무로 만든 집이 엉성해서 벌어진 틈 사이로 눈보라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런 시간이 아니어도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은 정말이지 매일매일 감동의 순간이다. 모든 학교의 건물이 그러하진 않겠지만,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은 한쪽 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건물 뒤에 있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연구실 뒤엔 산 혹은 언덕이 있는데, 산 혹은 언덕의 모습을 모두 볼 수는 없지만, 그 언덕에 자라는 나무들이 사시사철 변해가는 모습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계절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다. 죽어 다시 태어날 때 어떻게 태어날 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는 바람처럼 언덕 혹은 산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는 건, 그저 피곤해서 잠시 눈을 쉬려는 행위 이상이다.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은 북향인데, 북향이기 때문인지, 북향임에도 불구하고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서늘한 편이다. 겨울에야 좀 춥다고 해도 여름 같은 날은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아직도 선풍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연구실 문과 창문을 열어두면 그렇잖아도 낮은 온도의 연구실에 바람이 선선하게 불면서 더 시원한 공간으로 변한다. 그래서 어떤 땐 긴팔 겹옷을 준비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을 정도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사용하지 않고 있음에도 긴팔 겹옷이라니!
비록 여러 날 전, 히치콕의 [새]를 볼 때는 조금 무섭긴 했지만, 그럼에도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의 진짜 자랑거리는,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기도 한데) 하루 종일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겨울만 아니라면 혹은 새들이 머무는 시기이기만 하다면, 하루 종일 새소리가 들린다. 뻐꾸기 소리부터 여러 새들의 울음소리. 그래서 요즘 같은 시기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기보다는 비록 음질이 많이 안 좋다고 해도 스피커로 작게 음악을 틀어서 새소리와 함께 듣는 편이다. 새소리와 함께 듣는 음악의 즐거움은, 서로의 소리와 잘 어울리기만 한다면, 이 순간만큼은 어떤 고민들도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혹은 지금의 고민을 좀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창 밖을 보며 새소리를 듣고 있을 때면, 창틀에서 뛰노는 참새나 다른 새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꺄릇,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비명을 삼키며 절로 의자에서 일어나곤 한다. 새를 좀 더 가까이서 만나고 싶음. 물론 이런 반응에 새들은 훌쩍 어딘가로 떠나고 그럼 곧 미안함을 품지만, 종종 걸음으로 새들이 뛰어노는 창틀. 그리고 종일 새소리가 들리는 공간.
몸이 조금 피곤함에도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드는 건, 루인이 머무는 연구실이 이런 공간이기에 가능하겠지.
멋진 풍경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짙은 녹색의 변화와 더불어 새소리까지… 게다가 공기! 에어컨으로 차가워진 공기와는 느낌이 다르겠죠?! 뭔가 데자뷰가 느껴지는 글입니다.
(드디어 첫 덧글 ^^)
루인의 경우 어린 시절에 소위 말하는 시골에서 산 경험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런 풍경들이 더 좋아요.
에어컨으로 차가운 공기와 선선한 바람으로 시원한 공기는 너무 다르단 걸, 여름의 무더위가 심해질 수록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어요. 헤헤.
(이렇게 댓글을 달아 주시니, 기뻐요! ^^)
저는 연구실에 있으면 더 피로가 쌓여서 밖으로 뛰쳐나가는데 ㅋㅋㅋㅋㅋㅋ 부러워요 ;ㅅ;
뭐랄까, 루인도 광합성이 필요할 때면 연구실 밖으로 나가곤 해요. 북향이라 햇살은 안 들어 오거든요. 그래도 이곳에 무척 좋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