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혹은 괴물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오숙은 옮김, 서울: 미래사, 2002
Mary Shelley, Frankenstein, London: Penguin Books, 2003/1818/1831

[프랑켄슈타인]을 읽어야지 했던 건 꽤나 오래 전이라고 기억한다. 하지만 언제나 “나중에”란 말로 미루기 일쑤였다. 그러다 5월 어느 날, 수잔 스트라이커의 글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을 때, 그렇다면 [프랑켄슈타인]을 먼저 읽어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책을 사고 한 달이 흘러서야 읽을 시간이 생겼고, 오랜 만에 읽는 소설책이었다.

사실, 루인에게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주는 이미지는 기껏해야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이었다. 그러니 소설책으로 읽은 [프랑켄슈타인]은 낯선 내용이었다. 물론 다른 책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자이며, 괴물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소설을 읽으며, 내내 괴물에 감정이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괴물의 고백과 감정은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경험들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일테면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니 (…) 당신은 아무 죄도 없는 나를 기쁨에서 몰아내었소. (…) 그들은 날 멸시하고 미워하오. 인적 없는 산과 황량한 빙하가 내 피난처요.(152-153)

아무리 그들에게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도, 우선 그들의 언어를 완전히 습득하기 전에는 안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고, 언어 지식이 있다면 그들에게 내 흉측한 모습을 무시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소. 내가 보기에도 내 일그러진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인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깨닫게 된 사실이오.(171)

내 생김새는 소름이 끼쳤고 체구는 거대했소.(191)

괴물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샤뮤니 언덕에서 얘기하는 내용들, 인용하지 않은 너무 많은 구절들로 읽는 내내 숨이 막혔다.

“내 생김새는 소름이 끼쳤고 체구는 거대했소”가 특히 와 닿은 건, 이 말이 마치 mtf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ftm과 달리 mtf들의 경우, 소위 “남성체형”이라는 몸의 형태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통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일테면 넓은 어깨, 근육이 있는 팔이나 다리, 각진 얼굴 등등. 호르몬으로 몸의 형태가 변할 때에도 이러한 체형 때문에 “트랜스젠더란 사실”을 들키기 쉽고 그래서 혐오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트랜스젠더 중 ftm보다 mtf가 더 두드러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한다면, 그건 이런 체형이 한몫하는 셈이다. 물론 이는 그 사회에서 “남성”의 체형은 이러이러해야 하고, “여성”의 체형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란 인식에 기인하고.

메리 셸리야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괴물을 만드는 과정은,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들이 수술을 하는 과정과 닮아 있고, 괴물의 고백과 빅터의 반응은 트랜스젠더의 고백과 의사의 반응처럼 들린다. 그러니 아마, 두고두고 읽을 책이 될 것 같다.

10 thoughts on “[프랑켄슈타인] 혹은 괴물

  1. 핑백: Run To 루인
  2. 전부터 수업을 듣다가 종종 이 책얘기를 들었는데, 조금은 다른 맥락이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이 책에 구미가 당기기는 마찬가지네용. 읽어보고싶어요 흐

    1. 재밌어요! 강추예요. 흐흐.
      아옹님은 어떤 식으로 들었어요? 루인은 트랜스로 해석하는 것 외에 세 가지 정도를 읽었더래요. 어떤 사람은 빅터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괴물에 투사한 것(double)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괴물을 채식주의자로 해석하고, 처음으로 영화화한 감독은 자신이 게이여서 그런지, 괴물을 게이로 해석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이렇게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소설이 재밌는 것 같아요. 흐흐

    2. ‘인간’, ‘인간적인’ 같은 키워드로 진행된 수업이었어요. 그래서 프랑켄슈타인 말고도 ‘앤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바이센테니얼 맨’등이 언급되었었구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낸 인간, 그리고 그 기술에 초점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케네스 브래너감독의 ‘프랑켄슈타인’영화와 같은 맥락으로 읽었어요. 사실 그 영화를 본게 오래되서 지금 다시 본다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기도 해요. 어쨌든 그 책은 꼭 읽어봐야겠어요 흐흐흐흐

      그리고 괴물을 게이로 해석한것 재미있어요! runtoruin에 관련 글이 있나요?

    3. 아, 그렇군요. 왠지 재밌었을 것만 같아요. 헤헤.
      괴물을 게이로 해석한 건, 트랙백으로 연결한 논문에 나와요. 수잔 스트라이커가 게이로 분석하는 건 아니고요. 1931년에 제임스 웨일이란 감독이 찍은 영화를 언급하면서, 감독이 게이라 괴물에 감독의 정체성을 투사했다는 내용이에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 재현했는지 궁금해서 찾았는데, DVD가 품절로 나와서 안타까워 하고 있어요. 흐흐.

  3. 핑백: Run To 루인
    1. 혹시나 안 읽으셨으면, 꼭 한 번 읽으보세요. 왜 진작 안 읽었을까 싶더라고요.

  4. 핑백: Run To 루인
  5. 저는 헤테로섹슈얼 여성이에요. 런던에서 젠더&미디어 연구를 하고 있는 학생이고, 리딩 리스트 중에 스트라이커의 글을 읽다가 문득 국내 반응이 어떨까 해서 구글링 해서 찾아왔어요. 오래된 글인데도 하나하나 공감이 가요. 이 글을 읽다가 가슴이 너무 저려오고 아파서 눈물도 찔끔 나와 버렸어요.. 루인님의 글이 구글링하다가 그 와중에 너무 반갑고 아린 마음에 댓글 남겨요. ㅎ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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