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트랜스젠더는 젠더(여기선, 성별이분법)와*만* 관련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번째 숫자를 통해 성별을 둘로 구분하고, 그렇게 구분한 성별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업보라도 되는 양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얘기하고, 트랜스젠더들은 이런 성별이분법으로 인해 억압이나 어떤 갈등과 긴장을 경험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비해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바이, S/M, “이성애”자 등은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남성”으로 태어났으면 “여성”을 좋아하는 게 “당연”하고, “여성”으로 태어났으면 “남성”을 좋아하는 게 “당연”하며, 이런 “이성애” 섹슈얼리티가 아닌 섹슈얼리티들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인식들. 이른바 “강압적 이성애규범주의”로 인해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바이, S/M 등이 억압이나 어떤 갈등과 긴장을 경험한다는 주장이 있고.
하지만 때론, 젠더의 문제라고 얘기하는 트랜스젠더가 오히려 섹슈얼리티로 인해, 섹슈얼리티의 문제라고 얘기하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바이 등이 오히려 젠더로 인해 더 많은 갈등과 긴장을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앞서의 주장들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분명한 구분은 이론적인 분석틀(설명의 용이함)로서나 가능하지 구분해서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 둘을 구분해서 얘기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에 조차, 트랜스젠더들의 갈등과 긴장은 성별이분법도 있지만, 때로 이성애규범주의가 더 크게 작동할 때가 있다. 이 말이 “그” 트랜스젠더가 레즈비언이거나 게이 혹은 바이 등이란 의미는 아니다. 소위 말하는 “이성애”자라고 가정할 때에도 이성애규범주의로 인해 더 많은 갈등을 경험한다는 의미이다.
이 글이 좀 더 구체적이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는 건 아직은 공개할 수 없는 어떤 일 때문이다(그 일을 고민하다 다른 적절한 이야기를 못 찾고 있달까;;).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차원에서 대응을 할지 어떨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어떤 일로 지난 토요일 회의를 하며, “트랜스젠더는 성별이분법, 동성애/양성애는 강압적 이성애규범주의”란 식의 설명에 비추어 얘기한다면, 정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는 얘길 했다. 물론 새삼스러울 것 없는 얘기지만, 새삼스러울 것 없는 얘길, 발화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달까. 막연하게만 짐작할 뿐 이었달까.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많은 글이 성별이분법을 주요 소재로 놓고 얘길 하고, 성별이분법이 문제란 식으로 설명을 하는 경향에서 루인 역시 자유롭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는 와중에 이성애규범주의가 작동하는 지점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다시 한 번 자문하고 있다.
아무튼 지금 논의 중에 있는 그 일이 만약, 활동가들의 검열 없이, 그러니까 그 사람이 보내준 자료를 있는 그대로 다 공개한다면, (적어도 여성학/페미니즘/여성운동, 트랜스젠더 이론과 운동, 동성애 이론과 운동, 퀴어정치학 등등에서) 상당한 논쟁이 가능하다고 느끼고 있다. 성폭력특별법, 가해자 되기와 피해자 되기의 교차성, 피해경험자 진술의 의미, 현행 법체계에서 성폭력 가해자의 지위, 이런 가해자 지위의 불안정성, 정체성이 부인 되었을 때의 무력감과 가해자되기, 성별변경, 성전환수술과 수술의 범죄이용 가능성, 가장 부정적인 뉘앙스로서의 “변태성욕”, “진성” 트랜스젠더의 조건, 등등. 이런 많은 논쟁을 가능케 하는 일을 논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런 논의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 정말 가능할지, 그저 몇몇 사람들만 알고 지나가는 일이 될지.
저도 최근에 ‘성별정체성 혼란’을 느끼신다는 상담전화를 연이어 두 통 받았어요. 상담하기가 쉽지않은 내용이었는데… 어떻게 도와야하는지 알 수가 없더라구요.
성별정체성 혼란이 항상 성적 지향성과 겹쳐서 나타나다보니 상담 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나저나 상당한 상담경력이 있는 지구인님도 쉽지가 않으시다니, 역시 상담은 쉬운 일도 익숙해지는 일도 아닌 거 같아요.
그런 논쟁이 가능하다고 여겨요. 좀더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어요.. 어느 노래가사처럼 ‘밤새워 물어뜯어도 닿지 않는 마지막 살의 그리움’처럼 뭔가 닿을듯 말듯 간질간질한 느낌;;; 이랄까요
크크크. 노래가사를 읽다가 갑자기 웃음이 났어요. 흐흐. 근데 무슨 노래예요? ;;;
아마 이와 관련한 논의를 하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아요.
‘새’라는 민가인데요, 김지하씨의 ‘새’라는 시를 노래로 만든거에요. 노래 분위기는 서정적이고, 슬프고 그런데 가사에서 저부분만 딱 떼어서 보면 웃음이 나지요 ㅋㅋ
아앗, 그렇군요. 흐흐.
근데 김지하의 가사로 부른 노래하면, 항상 김광석의 “회귀”가 떠올라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