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가람, 우리는 매일매일

강유가람 감독의 다큐, “우리는 매일매일”을 다시 상영해서 봤다. 슬픈데 기쁜 거, 극장에 혼자 있었다. 하지만 이 다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봤겠지만 더 많이 봐야하고 새롭게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페미니즘 운동과 문화사를 압축해서 배우기도 좋으니, 안 봤다면 꼭 꼭 꼭 봤으면 좋겠다. 다 보고 나면, 힘이 나고 신난다. 눈물도 좀 난다. 그래도 신난다.

남기고 싶은 메모.

필요한 건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자기 위치를 계속 고민하며 이어지는 관계였다. 위계와 억압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나온 관계 재구성, 즉 수평적 관계 구성은 역사를 고민하는데 어려움을 야기했다. 짜투리님은 선배를 부정하며 운동을 했다고 말했고 나 역시 비슷한 분위기를 배웠다. 하지만 짜투리님을 비롯한 여러 출연자가 말하듯 선배와 관계 맺는 법을 배워야 하고 동시에 후배와 관계 맺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수평적이기보다 이어지는 관계를 더 많이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이 다큐는 말해준다. 이어짐을 고민하지 않으면 내가 가진 권력, 자기 중심성을 사유하는 과정을 놓치게 될 수 있고 이 다큐는 이 지점을 두루 담아낸다. 그래서 좋았다.

페미니즘의 나이듦, 혹은 페미니스트로 나이들기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그 답은, 언제나 미래에 대한 단서는 익숙해서 잊힌 과거에 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저 흘러가지 않고 지금 현재를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다큐에 참여한 이들은 포착하고 있었다. 고된 노력 속에서, 사회의 변화도 담아낼 수 있어 좋았고 2019년에 처음 개봉했으니 5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5년의 시간이 지났기에 이 다큐가 담아내고 있는 소중함도 있다.

근데 이것저것 다 떠나, 다큐에서 만나니 다들 반갑네(혼자 내적 친밀감 표현함). ㅋㅋㅋ 비슷한 기획으로, 퀴어 활동가를 다룬 다큐도 나오면 좋겠다.

번역된 트랜스 자서전

최근 여러 편의 트랜스젠더퀴어 자서전이 번역되었고 그 중 몇 편을 읽고 있다. 넛이 쓴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현아율, 돌고래 2024)은 북토크도 찾아가고 줌토크도 참여했었고, 지금은 버그도프의 [젠더를 바꾼다은 것](송섬별, 북하우스 2024)을 읽고 있다. 넛의 책에서 느낀 어떤 불편함을 버그도프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 이유를 가늠한다. 넛의 기록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이 위험한 학교에서 내가 잘 다닐 수 있을까라는 태도가 저변에 깔려있다. 물론 주인공에게는 당시의 불안에 대한 맥락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버그도프의 자서전은 초반부터 분명하다. “사람들은 내가 자라서 자신들의 집단적 상상에 등장하는 위협적인 인물이 되기를 기다렸다”(32-33). 나를 위협하는 사회, 내가 위험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회. 여기에 두 자서전의 정치적 차이, 인종에 따른 트랜스 정치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넛의 책이 별로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나는 그 책을 열렬히 좋아하며 읽었고 나중에 서평이나 어떤 에세이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 번역하며 지은 제목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은 기념비적일 정도로 잘 지었고 또 상징적이다. 무엇보다 생물학에 대한 넛의 전문성이 담긴 부분, 주변 가족의 변화와 구체성은 넛의 책이 가진 소중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인종과 계급을 둘러싼 위화감 역시 어찌할 수 없게 신경쓰인다.

무엇이 되었든, 이 두 책 모두 많이 읽으면 좋겠다. 같이 읽으면 더 좋다. 슈라야가 쓴 [나는 남자들이 두렵다](현아율, 오월의봄)도 같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인도계 캐나다인으로 살아가며 겪는 경험을 담고 있는데, 수업에 참여한 한 분이 말하기를 오드리 로드가 아니라 슈라야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교차성 개념이 이해되고 감각적으로 와닿았다고 했다.

무엇이 되었든, 좋은 책이 많이 나오고 많이 번역되어서 정말 좋다. 참고로 세 권의 책 모두 번역도 좋다.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