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기사는 “보호기관까지 찾아가서 추행… 인면수심에 망가진 ‘가출 소녀’ “
우연히 거슬리는 제목이 들어왔다. “망가진”? 무엇이 “망가”졌다는 의미일까?
이 기사를 읽으며 화가 나기 시작한 건, 그 L의 폭력보다도 기사를 쓰는 기자의 언어와 해석 때문이었다.
“씻을 수 없는 상처”에서 기자가 말하는 “씻을 수 없는 상처”는 무엇일까? “망가진” 것과 “씻을 수 없는 상처”란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너무도 자명하다. 성. “여성”의 “정조”? “순결”? 결국 기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성폭력이 발생한 성별/젠더, 계급, 나이주의 등의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모두 지우고 대등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가정하는 동시에 그것은 “순결” 혹은 “정조”가 “망가”졌기에 생긴 “씻을 수 없는 상처”란 의미다.
하지만 “순결”이나 “정조”의 의미는 누가 요구하는 것일까. 그것을 그렇게까지 중요시 하고 강박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성애’-젠더구조에서 모든 사람은 ‘이성애’자야 한다는, “여성”은 “남성”을 “거치지 않은 순결한 존재”야 한다는 강박이 만든 의미들 아냐? (그렇기에 아래 인용한 내용에서처럼 “죄의식”을 요구한다. 도대체 K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그리하여 “씻을 수 없는”이란 말은 마치 성폭력 사건은 (피)해경험자에게 영원한 낙인을 찍는 그래서 다른 어떤 정체성보다도, 그 어떤 행동보다도 가출과 성폭력(피)해경험이 우선함을 의미한다. 그 어떤 순간에도 웃어선 안 되고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평생을 고통 속에서 지내야 하는 “투명한 피해자”로 본다는 의미다. K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든 상관없이 이미 K의 일생은 결정되어 있는 셈이다.
이런 내용은 더 짜증나는데, 초등학교 6학년이면 아무 것도 판단할 수 없는 나이야? 사실 이런 인식이 아동성폭력을 더욱더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게 하는데, 그건 아동을 순진하고 순수한 존재로, 무기력한 피해자로만 그리기 때문이다. 아동성폭력 사건마다 차이는 있지만, 상당수가 아동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존재”라는 이유로 발생한다. (세대 간의 사랑과는 구분할 것.)
아동을 이렇게 그리고 싶은 기자의 환상은 알겠지만 7살의 어린이도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한다. 어린이는 “잘 모르고 판단력이 없다”는 말은 아동기의 발명했기에 성립 가능한 언어들이다. 나이주의가 강력한 통제수단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일테면 20대 후반엔 결혼을 해서 30대엔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40대엔 안정적인 생활과 … 등등의 환상들로 인해 받는 각종 스트레스와 강박들) 10대들 역시 자신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 말은 25살의 성인 “남성”과 동일한 권력과 위치를 가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협상하고 그런 협상을 통해 행동한다는 의미이다. 어린 조카나 동생 혹은 과외 하는 학생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모르는 것 아니다. 누구와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설마 이 말을 “그러니 K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겠지?).
또한, 이런 인식은 “순진무구한” 어린이가 아닌 성인 성폭력(피)해경험자에겐 손쉽게 그 책임을 돌릴 수 있게 한다.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 “너도 즐긴 것 아니냐”란 말이 쉽게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성인은 더 이상 “순수”하지 않기에, 성폭력(피)해경험자일 수 없다는 인식,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의 (피)해 경험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경험자가 사건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몬다.
하지만 한창 사랑받고 행복해야 할 나이에 불안정한 가정환경과 궁핍한 생활이 소녀를 밖으로 내몰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더 많은 부아가 치밀었는데, 철저하게 ‘이성애'”정상”가족의 강박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 결국 “정상”가족이 아니었기에 문제라는 인식, 문제의 책임을 사회적 맥락이 아닌 한 가족에게만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상”가족이 아니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정상”가족이 아니면 문제가 있을 거라는 주변의 인식, 의심, 혐의들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엄마” 혹은 “아빠”가 없어서, 이혼가정이라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은 문제가 있을 거라고 끊임없이 말하고 그렇게 대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따지고 보면 “정상”가족이라고 문제가 없느냐고. 아동폭력, 아내폭력, 가정폭력 등등 상당수가 “정상”가족에서 일어나는 일 아냐? 이런 말을 통해 “정상”가족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환상과 허구를 만든다는 점에서 이런 인식은 더 위험하다. 그래서 이런 리플
을 가능하게 하고 폭력피해 속에 있는 사람들이 그 가정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아빠”가 아무리 폭력을 휘둘러도 ‘이성애'”정상”가족은 화목하고 단란하다는 환상이 가장 빠를 수 있는 해결방법을 불가능하게 한다.
가장 무책임하게 내뱉는 마무리인 이 구절은 앞서 한 비판을 종합하고 있는데, 사회엔 아무런 책임이 없어? 가출했다고 하면 무조건 나쁘게만 바라보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들-루인을 비롯해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이 기사를 읽은 사람, 이 소식을 들은 사람 혹은 접하지 못한 사람들까지)의 태도, 이혼가정은 “문제”(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을 거라는 태도들이 뒤섞여 있고, 성별, 나이주의, 계급 등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데, 마치 이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의 태도는 사건이 발생하고 지속하고 방치할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핵심이다. 루인에게 이 기사는 가해자 L 만큼이나 폭력적이고 “인면수심”이다.
“인면수심”이란 말도 문제가 많은데 “인면수심”이 아니라 그저 인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인면수심”이란 표현은 L에게만 문제가 있다는 식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가해자의 폭력동기를 권력관계가 아닌 알코올중독이라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정신에 이상이 있어서 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L의 폭력은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가능한, 인간이라서 가능한 폭력이지 “인면수심”이라서가 아니다. (“인면수심”이라니. 이건 순전히 인간이기주의, 인간우월주의의 표현일 뿐이다. 사실 그래서 더 화나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