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모자의 진실: 딱 “전체 관람가” 영화

2006.04.09.09:00 아트레온 5관 C-10, [빨간 모자의 진실]

전날 [나나]를 예매할 때, 많은 사람들이 [빨간 모자의 진실]을 예매하는 모습을 접했다. 개봉 전부터 기대했는데, 바로 이 기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9시를 보러 갔다. 며칠 전 바보같이 새벽 2시에 잤고 그때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인지라 너무 졸렸지만 그래도 9시에 [빨간 모자의 진실]을 즐기고 11시부터 서울여성영화제를 즐기면 딱이겠다 싶어서였다.

하지만 영화, 홍보문구처럼 더빙은 정말 좋았다. 그리고 끝. 홍보전단지에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말이 있는데, 범인이 등장하는 순간, 아 쟤가 범인이겠구나, 했다. 스토리는 네 명의 진술이 끝나는 지점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아하, 아하, 하는 재미가 있지만 그 지점을 넘어가면 진부하다. 그래서 후반부에 가면 지루했다. 그렇잖아도 졸음이 밀려오는데 스토리마저 진부하면 어쩌란 말이냐. 거의 잘 뻔 했다고 할까.

뭐, 딱 “전체 관람가”인 영화다. 더 뭘 바라랴.

안토니아스 라인/여성 애니메이션의 새물결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
2006.04.08.14:00 아트레온 2관, [안토니아스 라인], 1층G-9
2006.04.08.21:00 아트레온 1관, [여성 애니메이션의 새물결], 1층I-10

#[안토니아스 라인]
기존의 공동체와는 다른 공동체에 대한 상상력을 꿈꾸고 있다면, 이 영화는 참 유쾌하다. 관계를 맺어가는 방법과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른바 마을에서 무시하고 외면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공동체를 엮어가는 안토니아의 집은 언제나 즐거운 공간이다. 결혼을 강제하는 이성애-젠더 관계를 거부하며 친구처럼 지내는 관계를 엮어가고, 아버지/’남성’ 중심의 종교를 조롱하는(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다) 등등의 상상력.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이른바 “타자”의 삶이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즐겁다는 걸 드러낸다는 점이다.

강추!

#[여성 애니메이션의 새물결]
작년처럼 올해도 기대했지만, 힘들었다. 단편 14편을 즐긴다는 건, 장편 14편을 연속해서 즐기는 것과 같은 집중력과 노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피로가 누적되어 있기에 집중력이 다소 떨어진 점도 있다. 하지만 반쯤 했을 땐 이미 지쳤고 그냥 받아들이는 상태였다. 그래도 [커밍아웃]은 좋았다. 언어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 [비행기 납치범, 레일라 카흐레드]와 [침묵에 대한 의문]과 엮어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뭐, 이 단편 때문에 선택한 것이지만.

#상영 작품은
베티 / 클라라 / 월광 / 거지 포핀 / 육다골대녀 / 커밍아웃 / 산다는 것은 / 몬스터 / 치명적 비만 / 강박증 / 헤비 포켓 / 시티 파라다이스 / 해골여인 / 피난처

나나

2006.04.08.11:20 아트레온 9관 F-10, [나나NANA]

울었다. 나나가 우는 장면에서 같이 울었다. 첨엔 뭔가 시시할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푹 빠져 있는 루인을 느꼈다. 언젠가 후편을 제작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기대 중.

쉽게 느낄 수 있듯 ‘레즈비언’/이반queer 관계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단, ‘이성애’ 관계와 비’이성애’ 관계가 교직하며 감정이 오가기에 더 짜릿하다. 단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고정하고 있는 감정을 묘사하는 것보다 계속해서 교차하는 감정들을 느끼는 것이 더 즐겁다. 정체성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하는 것이며 언제나 경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나]를 즐기며 ‘이성애’적인 발화를 하면서도 비’이성애’/이반적인 행동을 했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에 돌이키면, 유쾌하고 짜릿한 날들. [나나]는 그런 영화다. 그래서 다시 즐기고 싶은 영화다.